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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노자를 읽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진 이유

by lee-niceguy 2025. 4. 8.

1. 무위(無爲)의 철학 – ‘하지 않음’이 왜 이렇게 매력적인가

노자는 『도덕경』 서두에서 말한다. “도(道)는 말로 할 수 없으며,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는 단순히 언어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인 상태는 인간의 억지와 욕망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는 철학적 통찰이다. 이처럼 노자의 사상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인위적인 개입 없이 스스로 그러한 상태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현대 직장 문화는 그와 정반대의 철학 위에 놓여 있다. 일상은 쉴 틈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로 가득하고, 구성원은 KPI와 OKR이라는 이름의 숫자들에 따라 움직인다. 창의성은 보고서 안에 갇히고, 자율성은 팀장 결재에 종속된다.

 

노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과도한 행위’를 숭배하는 시스템에 살고 있다. 무엇인가를 성취해야만 인정받고, 계속해서 속도를 높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강박. 그러나 『도덕경』은 말한다. “무릇 억지로 하려 하면 이룰 수 없고, 지나치면 도에 어긋난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진 이유는 이 무리함이 내 삶의 중심이 되어버렸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상태가 불편했고, 점점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노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게으름이 아니라, 존재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본다. 그 철학 앞에서 나는 내가 너무 열심히, 그리고 불편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자를 읽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진 이유

 

2. 유약함의 힘 – 강함이 아니라 흐름에 순응하는 삶

노자는 『도덕경』에서 반복적으로 부드러움의 지혜를 강조한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 이는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통찰이다.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되, 어느 순간 단단함을 이기는 그 강인함은 무력한 것이 아니라 더 큰 힘을 품은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회사에서 흔히 강한 리더, 날카로운 판단력, 확고한 추진력을 ‘성공’의 핵심 덕목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 강함은 자주 타인을 짓누르고, 관계를 소진시키며, 나 자신의 여유까지도 깎아낸다. 노자의 철학은 이런 강함의 구조에 조용히 반문한다. 정말로 단단한 것이 더 나은가, 아니면 유연하게 흐르는 것이 더 오래 가는가?

 

직장에서의 하루하루는 생존을 위한 전투처럼 느껴졌다. 실수 없는 발표, 정확한 회의록, 예측 가능한 기획안, 그리고 상사의 눈치를 정확히 읽어내는 감각까지. 나는 ‘강해지는 법’을 배웠지만, 동시에 점점 ‘굳어져 가는’ 자신을 느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는 능력이 늘어날수록, 내 안의 유연함은 사라졌다. 노자의 철학은 그 지점에서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쉽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간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졌던 건 실패 때문이 아니라,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흐름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유약함은 포기의 다른 말이 아니라, 본래적인 나를 되찾는 방식이라는 걸 『도덕경』은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노자는 ‘가장 낮은 것이 가장 높은 것을 이긴다’라고도 말한다. 조직 내에서 낮은 자리는 종종 무시당하고, 유연함은 결단력 부족으로 간주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성의 공간’을 지키는 마지막 선일지도 모른다. 나는 타인보다 앞서기보다, 흐름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수많은 직장인은 지금도 ‘빠름’과 ‘강함’ 사이에서 지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생존 전략은 부드러움일지도 모른다. 흐르고, 감싸고, 기다리는 힘. 노자는 말한다.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지극히 강한 것을 이긴다.” 이 철학은 오늘날의 직장 문화에서 잃어버린, 그러나 반드시 되찾아야 할 내면의 진실이다.

 

3. 존재 중심의 사고 –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닌 ‘잘 존재하는 사람’

노자는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그것들을 기른다”고 했다. 도란 근원적인 존재의 법칙이고, 덕은 그것을 조화롭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 말은 단순한 도덕적 미사여구가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 중심적 성찰을 내포한다. 반면 현대 조직문화는 인간을 철저하게 ‘역할 수행자’로 분류한다. 마케터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획자는 전략을 수립하며, 디자이너는 시안을 낸다. 이름보다 직무가 먼저 불리고, 감정보다 효율이 중요시되는 문화 속에서 인간은 점차 자신의 본질을 잃어간다. 나는 그 속에서 하루하루 기능으로만 존재했다.

 

노자는 “되려는 자는 구부러지고, 가지려는 자는 잃는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무엇이 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을 깎고 있는지에 대한 경고다. 나는 나의 정체성을 실적 그래프와 성과 지표 안에서 해석하려 들었다. '이번 분기 실적이 좋으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능한 인간이다.’ 이런 공식은 마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신념처럼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노자의 질문은 다르다. 그는 ‘성과를 통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으로 나를 증명하라’고 말한다. 이 철학은 나에게 대단히 낯설면서도 간절한 해방의 언어였다.

 

나는 더 이상 ‘유능한 인재’라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숨 쉴 수 있어서 좋고, 길을 걷다가 나무를 보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잘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삶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다. 회사 안에서의 나는 매뉴얼대로 살아가는 자동기계에 가까웠지만, 노자의 철학은 나에게 ‘자동’을 멈추고 ‘진짜 나’로 돌아오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쌓였을 때, 나는 조직을 떠나는 것에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은 했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4. 퇴사의 철학 – 나를 지키기 위한 ‘그만두기’의 미학

노자의 철학은 퇴사라는 행위를 단순한 회피나 도망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친 개입을 멈추고,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하나의 선택으로 본다. “때가 이르면 나아가고, 때가 아니면 물러난다.” 퇴사는 일종의 자기 보존이며, 자기 회복이다. 모든 것을 쥐고 놓지 않으려 할 때 오히려 파괴가 오고, 내려놓고 물러설 때 진정한 자유가 온다는 말. 나는 그 말 앞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나의 에너지를 올바르게 쓰고 있는가?’ 그리고 대답은 ‘아니다’였다. 나는 회사에 속해 있었지만, 내 안에 나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노자의 가르침은 단순히 조직을 떠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 혹은 ‘살아남는 지혜’를 말한다. 그 지혜는 외부의 기대와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내면과의 대화를 통해 균형을 회복하는 능력이다. 퇴사는 그 회복을 위한 시작일 수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붙어 있음’만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어떤 이탈은 새로운 흐름을 타기 위한 가장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은 단순한 유유자적이 아니라, 가장 치열하게 나를 지키는 철학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바로 그 철학을 내 삶에 적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