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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괴테의 "파우스트"와 스타트업 창업가의 욕망

by lee-niceguy 2025. 4. 10.

지식의 한계를 넘어선 욕망 - 파우스트 박사의 문제의식과 창업가의 집착

 

괴테의 『파우스트』는 단순한 고전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디까지 성장과 성공을 추구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는지를 근본적으로 묻는 실존적 질문의 집합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의학, 철학, 신학 등 모든 학문을 섭렵한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는 지식이 주는 만족에 한계를 느끼고, 결국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으며 경험, 쾌락, 힘을 좇는 삶에 돌입한다. 그의 고뇌는 오늘날의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현대의 창업가는 단순히 회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자다. 그들에게 현실은 늘 부족하며, ‘성공’이라는 개념조차 경계 너머에 놓여 있다.

 

지식에 대한 열망은 곧 통제와 확장의 욕망으로 바뀐다. 파우스트는 신의 영역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상징이며, 창업가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질서를 대체하려 한다. 이 지점에서 창업가는 파우스트처럼 스스로의 한계를 무시한 채 앞으로 돌진하는 존재가 된다. 문제는 그 욕망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더 큰 투자, 더 빠른 성장, 더 많은 사용자, 더 강력한 영향력—이 모든 요소는 창업가를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와 맺은 계약이 ‘멈추는 순간 내 영혼을 내주겠다’는 약속인 것처럼, 오늘의 창업가들 역시 멈추는 법을 잊은 인간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스타트업 창업가의 욕망

 

거래의 윤리 - 메피스토와의 계약, 그리고 투자자와의 계약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와 일종의 “실존적 거래”를 맺는다. 그 계약의 핵심은 단순한 영혼의 매매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완전한 만족을 느낀다면, 그 즉시 내 영혼을 가져가라”는 선언이다. 이는 인간이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존재라는 점을 전제하고, 욕망의 한계 없는 확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한 도박이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투자자와 맺는 계약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단지 돈과 지분의 교환이 아니라, 창업가의 미래와 철학, 삶의 우선순위까지도 포함하는 다층적인 약속이다. 투자자들은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성장과 확장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방향 제시자이자 가속 페달을 밟는 존재다.

 

초기 창업가는 문제 해결, 새로운 가치 창출, 사회적 혁신이라는 미션을 안고 출발한다. 그러나 시리즈 A, B, C를 거치며 기업은 점차 속도와 실적, 외형 성장의 수치로 압축된다. 제품의 철학이나 팀의 문화보다 투자자의 프레젠테이션에 맞춘 비즈니스 모델이 더 중요해지고, 매출 곡선이 사람들의 사기를 대체한다.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에게 "멈추지 말라"고 속삭인 것처럼, 오늘의 투자 구조는 창업가에게 멈춤을 허용하지 않는 레이스를 강요한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단순히 계약의 내용이 아니라, 계약 이후 창업가의 자기 인식이 어떻게 변형되는가이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경고한 진짜 악은 메피스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거래에 익숙해져가는 파우스트의 무감각함이다. 윤리적 기준은 점차 느슨해지고, 선택의 기준은 더 빠른 성장을 위한 도구 중심으로 바뀐다. 이 흐름은 오늘날 스타트업 세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성장을 위한 합리화는 종종 관계의 파괴와 철학의 포기를 정당화한다. 창업가는 처음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더 이상 팀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 시장을 위한 존재로 재정의된다. 결국 이 계약은 ‘자기 자신을 담보로 하는 투자’이며, 창업가의 정체성이 메피스토적 시장 논리와 융합되어 가는 과정이다.

 

욕망의 가속과 인간성의 파괴 - 그레첸의 희생과 조직 문화의 붕괴

 

『파우스트』에서 가장 충격적인 비극은 파우스트 개인의 고뇌가 아니라, 그의 선택과 욕망이 주변 인물들에게 끼친 파괴적 영향이다. 특히 그레첸은 파우스트의 야망과 열정에 휘말려 희생되는 대표적인 존재다. 그녀는 파우스트에게 진실한 애정을 느꼈지만, 그의 삶에는 더 이상 한 사람의 감정이나 도덕적 경계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이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의 삶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창업가의 비전과 추진력이 커질수록, 종종 그 주변의 관계, 윤리, 공동체적 가치는 속도와 성과의 이름 아래 희생된다.

 

실제로 스타트업의 초기 팀은 대개 가족처럼 가깝고, 비전을 공유하며 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갈등이 생기고, 비전의 차이나 자본의 논리로 공동창업자나 초기 핵심 인력이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왜 시작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점점 흐려지고, ‘어떻게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가’만이 남는다. 괴테는 이 지점에서 인간성의 파괴가 본격적으로 일어난다고 본다. 파우스트는 그레첸의 파멸을 안타까워하지만, 결국 자신이 만든 세계의 윤리적 책임을 회피한다. 그는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레첸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 버린다. 이처럼 욕망은 인간성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며, 결국 누군가의 파괴 위에 새로운 시스템이 세워지는 것이다.

 

조직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 같은 문화’는 KPI와 OKR 앞에서 점점 사라지고, 주 52시간이 무색한 ‘자발적 야근’ 문화가 뿌리내린다. 스타트업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멋진 것을 만들자’는 이상으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사람은 ‘성과의 도구’로만 취급되기 시작한다. 이는 곧 그레첸의 비극이 조직 단위로 확대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욕망의 가속이 반드시 파괴를 수반함을 경고하며, 그것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무의식적 선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파우스트적 구원과 스타트업의 미래 - 회심할 수 있는 욕망은 존재하는가

 

괴테의 『파우스트』는 비극적이면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담은 작품이다. 1부에서 파우스트는 끝없이 추락하고 파괴하지만, 2부에서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시도하며 욕망을 넘은 창조의 단계로 진입한다. 그는 여전히 메피스토의 지배 아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으려 한다. 이 모습은 오늘날 건강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닮아 있다. 무한 성장의 강박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과 인간적 가치를 회복하는 창업가가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은 ‘유니콘’이 되는 것보다, ‘지속 가능한 인간 중심 조직’을 만드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파우스트는 결국 죽음의 문턱에서야 삶의 의미를 자각하고, 마지막 순간 진심으로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 이것이 구원의 조건이었다. 스타트업 창업자들도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 그러나 그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의미의 완성일 수 있다. 수많은 피벗과 실패, 성장과 축소를 겪으며 기업이 도달해야 할 지점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이 욕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그 욕망을 조절하고 회심할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그 회심의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파우스트는 결국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품은 존재였고, 바로 그 점에서 창업가와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