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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자기 앞의 생'을 읽고 ‘가족’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다

by lee-niceguy 2025. 4. 10.

1. 관계의 시작 - 피가 아닌 선택으로 맺어진 가족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묻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모모는 부모 없이 자란 고아이며, 그의 법적 보호자인 로자 아줌마는 과거 창녀였던 유대인 노파다. 이 두 인물은 혈연도, 법적 가족도, 같은 민족도 아니다. 하지만 독자는 이들이 나누는 관계 안에서 전통적 가족보다도 더 깊고 단단한 유대를 목격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가족이 된 이유가 '피'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이다. 서로를 돌보려는 마음,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 그리고 삶의 구체적인 순간을 나누는 일상이 이들을 가족으로 만들어간다.
 
로자는 모모에게 "엄마"가 되려 하지 않는다. 모모 역시 로자를 "할머니"나 "보호자" 같은 명확한 틀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둘은 명확히 서로에게 속한 존재가 된다. 로자는 모모의 식사를 챙기고, 모모는 로자의 숨소리를 걱정한다. 이 과정은 그 어떤 제도적 명칭보다도 더 강력한 정서적 연결의 과정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가족이란 ‘태어날 때 주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삶 속에서 만들어가는 서사적 관계’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있다. 비혼 동거, 1인 가구, 동성 부부, 입양 가정 등은 더 이상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일부다. '자기 앞의 생'은 이러한 흐름보다 훨씬 앞서서, 가족을 형식이 아닌 내용과 과정으로 정의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서 모모가 스스로 로자를 ‘지켜야 할 존재’로 받아들이는 순간은, 한 인간이 책임을 선택함으로써 가족이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피와 문서가 아니라 돌봄과 기억, 책임과 감정이 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논리가 아니다.
 

'자기 앞의 생'을 읽고 ‘가족’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다

 

2. 사랑의 언어 - 비정형 가족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교류

 
'자기 앞의 생'에서 로자와 모모는 말로 사랑을 주고받지 않는다. "널 사랑해"라는 말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독자는 그보다 더 깊고 복합적인 감정의 언어를 두 인물 사이에서 느끼게 된다. 이들의 사랑은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숨겨진 걱정, 무심한 듯 반복되는 행동, 지켜보는 눈빛, 무너지는 일상 속에서 작은 배려를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정서는 전통적인 가족 내의 표현 방식과도 다르며, 오히려 더 진실하고 구체적이다. 로자는 노쇠함 속에서도 모모에게 존엄을 지키려 하고, 모모는 철없이 구는 듯하면서도 로자의 건강 상태를 예민하게 감지하며 그녀를 보호하려 애쓴다.
 
오늘날 혈연 중심의 가족은 종종 의무와 책임의 구조 속에 갇혀 있다. 부모는 자녀를 교육시켜야 하고, 자녀는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감정을 억누르기도 한다. 그러나 '자기 앞의 생'의 인물들은 그 어떤 의무도 지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서로를 선택하고 사랑한다. 이 점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 중 하나다. 인간은 혈연을 넘어, 자신의 감정과 삶의 경험을 통해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 소설은 또한 사랑이란 말보다 행동, 감정보다 습관, 고백보다 책임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자와 모모는 매일같이 사소한 일들을 반복하며 서로에게 삶의 안정성과 정서적 안전지대를 제공한다. 이렇듯 말로 정의되지 않는 사랑의 형태는, 오늘날 수많은 비정형 가족, 입양가정, 노년 동거, 돌봄 관계 등에서 그대로 발견된다. 결국 '자기 앞의 생'은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고, 가족이란 개념이 감정과 일상의 실천 속에서 재구성될 수 있는 감정의 공동체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3. 돌봄의 윤리 - 가족을 구성하는 새로운 책임감

 
가족이라는 개념은 오랫동안 ‘보호’와 ‘의무’라는 이중의 기둥으로 지탱되어 왔다.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으로 가족 내 역할이 규정되었다. 그러나 '자기 앞의 생'은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소설 속 로자 아줌마는 자신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여전히 모모를 먼저 걱정하고 보호하려 한다. 반대로 아직 열 살 남짓의 모모는 오히려 점차 그녀를 돌보는 위치로 나아간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돌봄의 상호성을 보여준다.
 
모모는 법적으로 로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그는 점차 ‘로자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그 선택은 의무가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된 윤리적 결단이다. 이처럼 ‘선택된 책임’은 혈연의 강제성이 아니라 자발성에서 출발하며, 그것은 오히려 더 강력한 유대감을 낳는다. 모모는 단지 그녀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존재가 된다. 이는 단순한 봉사나 효심이 아니라, 한 인간의 고통을 함께 감당하려는 윤리적 실천이다.
 
이러한 돌봄의 윤리는 현대 사회에서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고령화, 1인 노년, 장애인 돌봄, 요양 간병 등의 상황 속에서, ‘누가 누구를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단지 제도적 문제를 넘어 윤리적 사유로 확장되고 있다. '자기 앞의 생'은 제도 밖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비형식적이고 자발적인 가족의 윤리 모델을 제시한다. 특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인물이 서로를 의지하고 지지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는 모습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쓸 수 있게 한다. 가족이란 결국, 누군가의 고통과 쇠약함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견디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의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4. 정체성과 기억 - 가족이 만들어주는 내 인생의 이야기

 
모모는 아랍계 이민자이며 고아로 자라난 소년이다. 그는 국적도, 혈연도, 사회적 지위도 불확실한 존재로, 프랑스 사회 내에서 정체성의 경계에 놓여 있다. 하지만 로자 아줌마와의 공동생활을 통해 그는 점차 자기 존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는다. 로자와 함께 보낸 일상은 그의 과거를 구성하고, 동시에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보호나 교육의 차원을 넘어, 정체성의 중심축으로서의 관계의 힘을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와 살았고, 누구에게 사랑받았으며, 누구를 지켜냈는지를 통해 자신을 서술하게 되는 존재다.
 
모모에게 로자는 단지 보호자가 아니다. 그녀는 모모의 ‘기억 속 역사’의 중심이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은 영웅적이거나 극적이지 않지만, 그 안에는 웃음, 눈물, 두려움, 안도, 상실 같은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다. 이 모든 기억이 모모를 구성하는 서사가 된다. 우리가 흔히 가족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배우듯, 모모도 로자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얻는다. 정체성은 혈통이나 출신이 아니라, 경험과 기억의 축적 속에서 살아난다.
 
'자기 앞의 생'은 가족이란 혈연의 체계라기보다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 간의 감정적 공동체라는 것을 말한다. 이 공동체는 이름이나 법적 관계보다도 훨씬 더 본질적인 유대이며, 인간이 존재를 지탱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 된다. 로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모모는 단지 보호자를 잃은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을 함께 나눈 존재를 잃은 것이다. 그 슬픔은 단지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을 설명할 일부 언어를 잃어버린 상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가족을 경험한 사람’으로 성장했고, 그 기억은 그의 삶을 끝까지 지탱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