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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일리아스' 속 영웅신화와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by lee-niceguy 2025. 4. 11.

신화 속 영웅의 조건 - '일리아스'와 아킬레우스의 선택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단순한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으며,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실존적 서사시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아킬레우스는 전사로서의 완벽한 육체적 능력과 군사적 카리스마를 갖췄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고뇌와 감정의 깊이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전쟁이라는 비정한 공간 속에서 ‘명예로운 죽음’과 ‘평범하지만 긴 삶’ 사이에서 고민한다. 결국 그는 평온한 삶 대신 전장에서 이름을 남기겠다는 선택을 하고, 이는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대의 정의를 상징한다. 영웅은 단지 싸우는 자가 아니라, 선택과 책임을 지는 자라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단지 신화적 인물이 아닌, 인간과 신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인 존재다. 그는 자기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아군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히고, 가장 친한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깨닫는다. 이러한 서사는 오늘날의 히어로물처럼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다. 오히려 '일리아스'는 인간 내면의 모순, 감정, 판단의 오차까지도 함께 품으며, 영웅의 진짜 본질은 내면의 약함을 견디는 힘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처럼 아킬레우스는 물리적 강인함 이상의 존재로, 심리적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상의 전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웅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 상징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감당하려는 강인한 정신에서 비롯된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를 통해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의 젊은 세대, 특히 미래를 상상하는 초등학생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 -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2020년대 초등학생들이 선호하는 장래 희망 목록을 살펴보면 ‘유튜버’, ‘아이돌’, ‘프로게이머’, ‘크리에이터’ 같은 직업이 상위를 차지한다. 교사, 의사, 경찰처럼 전통적인 직업군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디지털 공간과 대중적 노출의 영역에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지 ‘아이들의 일탈적 선택’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 구조와 미디어 환경, 그리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투영된 결과다.
 
아이들은 이제 무기를 들고 싸우는 영웅을 꿈꾸지 않는다. 그 대신, 유튜브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거나, 게임 속에서 팀을 이끄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 한다. 이는 아킬레우스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듯, 오늘날 아이들 역시 디지털과 현실 사이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영웅상의 반영이다.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말 속에는 단순한 유명세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깊은 심리가 숨어 있다.
 
또한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란 단순히 직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와의 관계, 인정 욕구, 자존감, 표현의 방식과도 연결된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아이는 단순히 게임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을 통해 인정을 받고 싶고, 공동체 안에서 경쟁력을 갖춘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는 고대의 영웅들이 ‘신들에게 인정받고 공동체에 이름을 남기고자 했던 동기’와도 맥을 같이 한다. 결국 오늘날 아이들은, 전쟁의 영웅이 아닌 일상의 플랫폼에서 존재를 증명하는 디지털 시대의 아킬레우스가 되고 싶은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영웅상 - 명예에서 자아실현으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모두 어떤 ‘대의’ 혹은 ‘역사적 목적’에 귀속된 존재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자신의 운명을 감수하며 싸우고, 헥토르는 가족과 조국을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 이들은 공동체의 명예를 대표하는 존재이자, 신화라는 거대한 서사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당시의 영웅은 개인적 감정보다 공공성과 명예, 불멸의 이름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고, 그 삶은 개인적 희생 위에 구축되었다. 특히 아킬레우스는 ‘이름을 남기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상징적 인물로서, 고대인의 가치체계를 집약한 존재다.
 
반면 오늘날 초등학생들이 상상하는 영웅상은 훨씬 더 개인적이고 정서적이며 감각 중심이다. 이들은 전쟁터가 아닌 일상에서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싸운다.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아이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브이로거는 자신의 하루를 편집하며 소소한 일상을 영웅적 서사로 바꾼다. 프로게이머는 디지털 전장에서 승리를 이끌어내고, 웹툰 작가는 상상의 세계에서 정의를 구현한다. 이들은 더 이상 국가나 공동체의 대표가 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답게 살기’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성취하기’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이는 단순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자아실현 중심의 영웅 서사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 변화는 단지 세대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영웅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공동체의 이상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영웅이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아낸 사람”이 영웅이 되는 시대다. 초등학생들의 꿈은 더 이상 아킬레우스처럼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의미와 즐거움을 누리는 삶을 꿈꾸는 데 있다. 영웅이 곧 ‘기억’이었던 시대에서, 이제는 ‘공감’의 시대로 옮겨온 것이다.
 

새로운 신화 쓰기 -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현대판 일리아스

 
'일리아스'는 신들과 인간, 전쟁과 사랑, 명예와 죽음이 교차하는 고전적 대서사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읽는 것은 결국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갈등, 상실, 분노, 용기, 후회, 이 모든 감정은 고대 그리스인만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초등학생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 감정이 표현되는 무대다. 고대에는 창과 방패가 있었다면, 지금은 카메라와 마이크, 디지털 캔버스가 있다. 그러나 그 수단이 달라졌을 뿐,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갈망은 똑같다.
 
현대의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 속에는 단지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자기 서사적 우주가 담겨 있다. 유튜버가 되겠다는 아이는 영상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을 기록하고, 팬들과 교류하며 정체성을 구축한다. 이들에게 있어 브이로그 한 편은 일종의 ‘디지털 서사시’이며, 그 안에 하루라는 이름의 감정과 경험, 관계와 꿈이 녹아 있다. 누군가는 이를 가볍게 보지만, 이 일상적 기록이야말로 21세기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현대판 '일리아스'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신화를 목격하고 있다. 그 신화는 신들의 전쟁이 아닌, 디지털 공간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려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이 신화의 주인공은 초등학생이자, 동시에 작가이자 해설자이며 관객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삶을 해석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웅성을 재구성하고 있다. 오늘의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신화 속에서 ‘트로이의 목마’는 브이로그 속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될 수 있고, ‘헥토르의 장례’는 '좋아요'와 댓글 속 따뜻한 응원일 수도 있다.
 
결국 현대판 '일리아스'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매 순간에 쓰이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신들로부터 주어진 운명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의 서사자들이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진짜 영웅이란 기억되는 존재가 아니라 연결되고 공감되는 존재임을 새롭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