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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햄릿은 왜 매일 우울했을까 – 현대인의 선택장애와 고전에 대하여

by lee-niceguy 2025. 4. 9.

1. 선택 앞의 인간 – 햄릿이 ‘행동’ 대신 ‘망설임’을 택한 이유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선택의 기로에서 얼마나 무력하고, 때론 자기 파괴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심리극의 정수다. 햄릿은 아버지를 살해한 삼촌 클로디어스를 처단해야 한다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현하기까지는 끊임없는 사유와 감정적 요동, 도덕적 갈등에 휩싸인다. 그는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라는 문장 하나로, 인간 존재의 핵심인 자유의지와 운명,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날카롭게 묻는다. 그가 우울했던 이유는 단순히 사랑과 가족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처럼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가 내포한 철학적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햄릿은 결코 무기력하거나 무책임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과잉된 사유의 굴레에 갇힌 지성인이다. 그는 도덕성과 정의감, 의무와 감정, 실천과 윤리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매번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고뇌는 결과적으로 선택의 시기를 놓치게 하고, 결국 연쇄적인 비극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망설임은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니다. 그것은 사고하는 인간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내면의 필연적인 모순이다. 햄릿은 본질적으로 ‘행동하는 철학자’이며, 그가 우울한 이유는 세상의 불합리보다도 자신의 감정과 판단 사이에서 확신을 얻지 못한 데 있다. 현대인이 겪는 선택 장애와 비교했을 때, 햄릿은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 자신의 거울이다.

 

2. 현대인의 선택장애 – 정보 과잉 시대의 햄릿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수백 개의 제품을 비교할 수 있고, 수많은 커리어와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선택의 확장’은 역설적으로 ‘결정의 마비’를 초래한다. 인간은 일정 수준 이상의 옵션을 마주할 때 오히려 결정 능력이 떨어지는 인지적 과부하를 겪는다. 이는 심리학에서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라고 불리며, 선택의 자유가 늘어날수록 선택의 고통도 함께 증가한다는 현대인의 딜레마를 설명한다. 햄릿이 복수의 타당성과 도덕성을 끊임없이 검토하느라 결정을 유예했듯, 우리는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다.

 

햄릿은 왕자였기에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 무엇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현대의 우리는 기술적으로는 무한한 선택지를 가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이라는 필터에 얽매여 있어 ‘진짜 나의 선택’을 하지 못한다. SNS는 끊임없이 비교와 검열의 공간이 되고, 우리는 매일 같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드 속에서 스스로의 선택을 의심한다. ‘지금의 나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더 행복했을까?’ 이런 질문은 햄릿이 “내가 옳은 일을 하는가?”를 수백 번 곱씹은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셰익스피어는 17세기에서 이미 이 의사결정 불안과 정체성 혼란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햄릿』은 선택 과잉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고의 정지 상태가 가져오는 결과를 경고하는 시대를 초월한 텍스트다.

 

햄릿은 왜 매일 우울했을까 – 현대인의 선택장애와 고전에 대하여

 

3. 감정의 혼란과 자기 의심 – 선택 이전에 정체성이 흔들릴 때

햄릿의 망설임은 단순히 ‘행동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깊은 고뇌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서 비롯된다. 그는 자신이 정의의 사도인가, 복수심에 사로잡힌 피조물인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무력한 인간인가를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는다. 이러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은 오히려 그를 행동 불능 상태로 몰아넣는다. 그는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 판단을 내리는 자기 존재 자체의 정당성을 먼저 증명받고자 한다. 이는 오늘날 수많은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 즉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성과’, ‘자기 계발’,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 요구는 내면의 기준이 아닌 외부의 평가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은 선택 그 자체보다 선택 이후 나의 이미지에 대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리학적으로도 선택 장애는 단순히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성향’이 아니라, 선택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과도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결정을 유보하거나 타인의 결정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햄릿이 끊임없이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내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를 자문했던 것처럼, 현대인들도 ‘내 선택이 나를 정의할까 두려워’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햄릿』은 이처럼 결정 이전의 자기 검열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장 정교하게 묘사한 고전이다. 그의 내면은 복잡하고, 감정은 들쭉날쭉하며, 사유는 끝없이 파고든다. 그는 의심하고, 후회하고, 분노하고, 또다시 침묵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심리적 패턴은 오늘날 ‘자기 인식이 과잉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햄릿은 어쩌면 우리의 감정, 우리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심리 드라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의 진폭과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끊임없이 해석하려 애쓴다.

 

4. 햄릿 이후의 삶 – 선택하지 않음이 답이 될 수 있는가?

『햄릿』의 비극은 ‘선택하지 못함’이 불러온 연쇄 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의 망설임은 단지 복수의 시기를 놓친 것을 넘어, 자기 존재 전체를 불확실성 속에 가두는 선택 부재의 결과였다. 그는 더 나은 결정을 위해 행동을 유예했지만, 그 유예가 반복되며 오히려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렸다. 이는 현대인의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완벽한 타이밍, 명확한 근거, 확신에 찬 판단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만, 현실은 그런 결정 조건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결국 선택하지 않음은 실패가 아니라, 삶의 흐름에서 이탈하는 다른 형태의 파멸로 이어진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선택의 본질을 드러낸다. 선택은 언제나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내려져야 한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결정할 수 없고, 감정은 늘 개입되며, 그 순간의 맥락과 주변 상황도 끊임없이 변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셰익스피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조건 행동하라’가 아니라, ‘의심 속에서도 전진하라’는 존재의 철학이었다. 햄릿의 비극은 곧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상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되묻는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선택지 속에서 ‘완벽한 선택’을 꿈꾸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이다. 『햄릿』이 주는 진짜 메시지는 ‘지금도 결정하지 못한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라, ‘그 망설임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인간다움의 증거라는 것이다. “To be or not to be”는 단지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와 실천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고민 전체를 포괄하는 질문이다. 햄릿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햄릿을 이해하고 껴안으며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이 고전이 우리에게 말하는 진짜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