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 자신을 쓰는 용기: 콘텐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몽테뉴의 '수상록'은 단순한 철학서도, 교양서도 아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의 기록이자,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정리해 보려는 시도의 총체였다. 몽테뉴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실이자 실험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그는 인간의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글쓰기를 선택함으로써, 수천 년 철학의 외적 명제를 개인적 언어로 재구성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태도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에게 ‘나는 쓸 이야기가 없는데요’라는 막연한 불안을 타파하는 실마리가 된다.
현대 콘텐츠 시장은 정보의 포화 속에 있다. 기술적 포맷은 다양해지고,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오히려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는 커진다. 대부분은 기존에 알려진 것만을 말해야 한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특별해야 한다는 기준 앞에서 자신을 검열한다. 하지만 몽테뉴는 반대의 방향에서 콘텐츠의 본질을 제시한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지만 철학 한다. 나는 아무도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나를 설명한다"는 그의 태도는, 오늘날 콘텐츠 제작자가 어떤 태도로 글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진짜 콘텐츠란 완성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각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과정 전체를 보여주는 서사다. 몽테뉴는 자신의 독자에게 지식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책은 나를 위한 것이며, 내가 가장 자주 읽는 독자는 바로 나다”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자기 인생을 실험 삼아 들여다보는 작업이야말로 콘텐츠의 원형적인 행위다.
유튜브 영상이든 블로그든, 브런치 에세이든,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 일을 왜 하게 되었는가’, ‘나는 이걸 좋아했는가’라는 단순하지만 진솔한 질문에서 콘텐츠는 생긴다. 자기 인생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용기, 그것이 콘텐츠의 시작점이다.
2. 일상을 기록하는 철학: 콘텐츠는 특별해야 할까?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거대한 사상이나 세계사적 사건보다, 자신의 일상적 관찰과 경험에 천착했다.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켤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친구가 밥을 먹을 때 보인 사소한 제스처가 왜 마음에 남았는지, 늙어가면서 느끼는 몸의 변화가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를 그는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이러한 태도는 ‘일상은 콘텐츠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은 정보성, 교육성, 자극성을 콘텐츠의 핵심이라 생각하지만, 몽테뉴는 그 반대의 지점에서 고유성을 발견한다. 그는 말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진부한 삶의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현대의 크리에이터들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나의 일상이 너무 평범한데, 누가 관심 가질까?”, “이런 루틴은 이미 누군가 다 했을 텐데, 뭐가 다르지?”라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콘텐츠는 사실 행위보다 시선의 문제다. 같은 식사를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브이로그’로 소비시키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식사에 얽힌 기억, 감정, 주변 인물과의 관계를 풀어내어 하나의 서사적 체험으로 전환한다.
몽테뉴는 바로 이러한 일상의 인문학화, 개인 경험의 사유화를 통해 비범함을 만들었다. 그에게 ‘특별한 콘텐츠’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순간은 자기만의 관점으로 다시 쓸 수 있다면 충분히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블로그의 글 한 줄, 인스타그램의 짧은 캡션, 유튜브의 일상 브이로그조차도 결국 ‘그것을 보는 나만의 시선’이 들어가 있느냐가 콘텐츠의 질을 결정한다. 몽테뉴의 방식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콘텐츠는 드문 것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드러난 일상 속에서 무엇을 사유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지금 내가 하는 평범한 일, 나만 아는 소소한 습관, 반복되는 생각들조차 내 방식으로 언어화되면, 그것은 이미 충분히 독창적 콘텐츠가 된다.
3. 불완전함의 미학: 콘텐츠는 다듬어져야 할까?
몽테뉴의 글은 ‘완성된 철학서’가 아니다. 그는 자기 생각을 단정적으로 주장하기보다, 망설이고, 되묻고, 의심하고, 유보하며 글을 썼다. '수상록'이 매혹적인 이유는 바로 이 ‘미완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한 번 생각을 적은 뒤에도, 몇 년 후 다시 덧붙이고, 수정하고, 반박했다. 이는 단순한 글쓰기 방식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태도다. ‘완벽하게 정제된 의견’보다, 흔들리는 사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 더 솔직하고 힘이 있다는 믿음.
현대 콘텐츠 제작자는 흔히 완벽한 결과물, 마감된 형식, 트렌드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추구한다. 하지만 이런 제작 방식은 오히려 창작자의 존재감을 지우고, 기계적인 반복을 낳는다. 몽테뉴의 방식은 그 반대다.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정직함이고 개성이다. 유튜브 영상이든 글이든, ‘지금 이 생각은 이렇지만 나중에 바뀔 수 있어요’라는 유보의 문장은 오히려 신뢰를 얻는다.
또한 몽테뉴는 말한다. “나는 말하면서 나 자신을 만든다.” 이 말은 크리에이터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뿐 아니라, 말하고 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만들어간다. 즉, 콘텐츠 제작은 단순한 생산이 아니라 자기 형성의 과정인 것이다.
완벽한 콘텐츠보다,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콘텐츠, 정제된 결론보다 움직이는 질문이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몽테뉴식 창작법은 오늘날 콘텐츠 시대에도 충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 절실하다.
4. 자기만의 언어 찾기: 오리지널리티는 어디에서 오는가
몽테뉴의 '수상록'은 인용으로 가득하다. 그는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 키케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민담과 속담, 시인의 한 구절까지 빈번하게 끌어다 썼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인용이 몽테뉴 자신의 언어 속으로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타인의 말로 시작했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전개함으로써 자기 언어의 틀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오리지널리티다. 즉, 새로움은 전혀 없던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엮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오늘날 수많은 콘텐츠는 서로를 참조하고 반복한다. 문제는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그 인용을 자기식으로 전유하는 능력의 차이다. 트렌드 주제를 다루더라도, 그 안에 ‘나의 톤과 시선, 해석’이 들어가는 순간 콘텐츠는 살아난다. 몽테뉴는 인용하면서도 “나는 이 문장을 빌려 쓰지만, 그 안에 나를 숨긴다”고 썼다. 이것이 자기만의 언어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또한 그는 “나는 책을 쓰기 위해 쓰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기 위해 쓴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콘텐츠의 목적을 다시 묻게 한다. 우리가 만드는 글, 영상, 사진은 팔기 위하는가, 혹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하는가? 몽테뉴의 방식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콘텐츠 안에 당신은 존재하는가?
그가 보여준 ‘자기 언어의 구축’은 오늘날 콘텐츠 제작자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창작 윤리이자 철학이다. 외부에서 유행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질문을 언어화하는 힘. 그것이 콘텐츠의 본질이자, 몽테뉴가 시대를 초월해 말해주는 오리지널리티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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