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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로크'의 자유론과 원격 근무의 철학

by lee-niceguy 2025. 5. 6.

1. 자연 상태의 회복?: 원격 근무와 장소로부터의 자유

 
로크의 '정부론'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자연 상태(state of nature)이다. 그는 인간이 태초에는 타인의 간섭 없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았다. 이 자연 상태는 무정부적 무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결정권에 기반한 자율적 질서를 뜻한다. 이후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고 정치사회로 진입하게 되며, 그 대가로 일정한 자유를 국가 권력에 위임하게 된다.

이 사상은 오늘날의 원격 근무(remote work) 현상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철학적 출발점이 된다.
코로나19 이후 확산된 원격 근무는 단순한 업무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공간에 대한 자유의 구조적 재편을 일으켰다. 기존의 오피스 중심 근무는 출퇴근, 직장 문화, 상사의 물리적 권한 등 여러 층위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해 왔다. 그러나 원격 근무는 노동이 더 이상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들었다. 이로써 개인은 로크가 말한 자연 상태처럼, 물리적 감시와 구속에서 비교적 벗어난 채 자기 시간과 공간을 계획할 수 있는 자유를 다시 획득한 셈이다.
 
그러나 이 자유는 완전한 해방이 아니다. 로크가 말하듯, 자유는 단지 간섭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질서 있는 규칙 아래서 작동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원격 근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통제의 해체가 아니라, 자기 규율(self-regulation)의 필요성을 증대시키는 조건이다. 오피스를 떠난 개인은 물리적 감시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만큼 자기 결정에 대한 책임과 자기 통제 능력을 요구받는다.

이 새로운 자유는 로크가 말한 자연 상태와 유사하지만, 그 내부에는 새로운 유형의 계약(시간과 성과에 대한 자기 계약)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로크'의 자유론과 원격 근무의 철학

 

2. 노동과 소유: 내가 일하는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로크는 '정부론'에서 노동이 재산을 정당화하는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노동을 더한 모든 것에 사람은 정당한 권리를 갖는다”고 보았다. 즉, 인간은 자연 상태의 자원을 자기 노동을 통해 개조할 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권리, 즉 소유권을 얻는다. 이 이론은 근대 자본주의 사상의 핵심이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오늘날 노동의 디지털화, 원격화 속에서 다시 질문되고 있다:
“지금 내가 일하는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원격 근무 환경에서 노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카페에서 작성한 보고서, 밤 10시에 보낸 이메일, 오전 회의 전 미리 읽은 문서 준비, 이 모든 ‘눈에 띄지 않는 노동’은 플랫폼과 소프트웨어 안에 흩어져 있지만, 명확한 시간 기록이나 소유감 없이 흐른다. 로크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노동은 존재하지만 그 노동의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과 주체성이 모호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근로자들은 원격 근무에서 ‘항상 대기 상태’에 있는 느낌, 혹은 ‘업무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이는 노동의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라, 노동의 무한 확장과 탈경계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로크는 소유란 노동과 결합될 때 정당해진다고 했지만, 오늘날 디지털 노동은 그 결합 구조가 약해지고 있다. 노동은 계속되는데 소유의 감각은 사라진다. 이는 마치 공공의 자원에 노동을 더했지만, 플랫폼이 그 결과를 독점하는 상황에 가깝다.

원격 근무자는 자기 집에서, 자기 시간에 일하지만, 그 결과물이 누구의 소유이며, 누구의 기준으로 평가되는지에 대한 주체적 권한을 잃기 쉽다. 로크가 중시한 자기 노동의 자기 결정권은, 오늘날의 디지털 노동 구조에서 플랫폼과 시스템의 규칙에 의해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3. 감시의 자유? 원격 근무와 디지털 규율의 이중성

 
로크는 '자유론'에서 자유란 단순한 방종이나 무질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유를 “타인의 의지에 예속되지 않고, 자연법 안에서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자유는 자율성과 동시에 일정한 법적·도덕적 경계 내에서만 보장되는 질서 있는 권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원격 근무 환경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자유’는 실제로 자기 통제의 확장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감시 체계에 의한 제약일 수 있다.
 
많은 기업은 원격 근무에서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해 타임 트래킹 소프트웨어, 실시간 업무 기록 시스템, 줌이나 슬랙을 통한 업무 상태 감지 기술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개인은 오피스의 물리적 통제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이제는 화면 속의 알고리즘과 시스템에 의해 보다 세밀하게 추적되고 감시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겉보기엔 자율적으로 보이는 이 구조는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규율 시스템(디지털 감시의 네트워크)속에서 작동한다. 이는 마치 로크가 경계한 ‘임의적 권력’이 디지털 환경에서 새롭게 재구성된 형태다.
 
로크는 자연 상태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고, 정당한 법률 아래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그러한 제약은 공익에 근거한 최소한의 규범적 통제여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오늘날 원격 근무에서의 감시는 ‘공익’을 명분으로 하면서도 실제론 자본의 효율성과 통제 욕망에 더 근접한 규율로 작동한다. 즉, 자기 결정권의 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감시의 기술적 진화가 자유의 본질을 다시 잠식하는 것이다.
 
이처럼 원격 근무는 자유와 감시가 동전의 양면처럼 작동하는 복합적 공간이다. 개인은 업무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듯하지만, 실제론 기업이 설정한 KPI와 가시성 논리 안에서 행동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자기 통제력은 감시 기술에 위임된 채 무력화된다. 로크의 자유론이 강조한 자율과 규율의 균형은 이 디지털 노동 환경에서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진짜 자유는 물리적 구속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평가하고, 결정할 수 있는 노동 조건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4. 자율의 윤리: 원격 근무 시대, 새로운 자유의 조건

 
로크의 자유 개념은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이성적인 인간이 스스로 행동을 판단하고 조절하는 능력으로 보았고, 그 전제에는 자기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다. 즉, 인간은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철학은 오늘날 원격 근무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원격 근무는 공간의 자유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시간과 행위에 대한 자기 경영 능력을 요구한다. 집이라는 사적 공간이 곧 업무의 공간이 되고, 가족과의 생활, 개인적 취미, 휴식과 업무가 물리적으로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충돌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로크가 말한 ‘내면의 자유’, 즉 자율적 존재로서의 자기 조율 능력이다.

우리는 이제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리듬과 원칙에 따라 일정을 세우고 업무를 완성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디지털 환경 속의 자율은 때때로 방임으로 흐르기 쉽고, ‘언제든 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곧 ‘항상 일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개인이 자기 행동의 목적과 기준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로크의 자유론은 여기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자유를 이성적 자기 절제와 자기 결정권에 기반한 능동적 행위로 보았다.

즉, 원격 근무의 자유는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을 때’에만 실현된다.
또한 로크는 정치적 자유의 본질을 법과 계약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조건에서 찾았다. 이를 오늘날 노동 환경에 적용하면, 개인이 일하는 방식과 시간, 평가 구조에 대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조율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 된다. 단순히 재택을 허용받는 것이 아니라, 업무 시스템과 규칙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설계자로서의 위치, 그것이 원격 근무의 자유를 완성시키는 요소다.
결국 원격 근무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자율이 감시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스스로 자기 통치의 주체로 성장해야 하며, 그를 위해 로크가 말했던 이성적 자유의 의미를 다시 숙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