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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플루타르크'와 리더의 휴식법

by lee-niceguy 2025. 5. 7.

1. 리더십의 피로: 플루타르크가 본 ‘멈춤의 기술’

 
플루타르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을 평행 비교한 '영웅전'을 통해 단순한 위인의 연대기를 넘어서, 권력과 인간성 사이의 균열을 예리하게 포착한 사상가다. 그는 군사적 천재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정치적 재능을 지녔던 자들이 어떤 심리적 균열에 직면했는지를 반복적으로 분석하며, ‘리더는 어떻게 승리하는가’보다, ‘리더는 어떻게 소진되는가’에 더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그는 리더의 쉼, 멈춤, 고요함이 리더십의 본질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내면적 장치임을 간파했다.
 
예컨대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전기'에서, 카이사르가 권력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결단을 내리고 확장을 거듭하며 결국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축이었던 ‘사적 사유’의 공간을 잃어버린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휴식’이란 단순히 에너지를 보충하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사유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존재의 균형을 회복하는 철학적 과정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오늘날의 리더십 환경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디지털 속도, 실시간 피드백, 즉각적인 결정이 당연한 시대 속에서, 리더는 더 이상 ‘잠시 멈춘다’는 행위를 사치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플루타르크는 말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걷고 있을 수 있다.”
 
현대의 조직에서도 ‘끊임없이 일하는 리더’가 미덕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런 리더일수록 정책은 정교하지만, 감정은 지쳐 있고, 전략은 날카롭지만 인간적 온기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플루타르크는 이에 반해, 사적인 시간을 통해 내면을 재정립한 리더들을 오히려 더 높이 평가한다. 키케로가 정적과 대중의 압박 속에서도 글을 쓰고 편지를 남긴 이유는 단지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리더십을 계속해서 반추하고 되살리기 위한 ‘조용한 리추얼’이었다.
 
결국 플루타르크가 말하는 쉼은 리더가 자기 결정력과 자기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는 오히려 생산성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다.
 
그는 이런 문장을 남긴다. “좋은 전략은 고요한 공간에서 태어난다. 고요하지 않다면, 그것은 반사작용일 뿐이다.”
오늘날 모든 리더가 명심해야 할 구절이 아닐까?
 

2. 감정의 정리: 플루타르크가 본 리더의 내면 정화

 
플루타르크는 감정을 단순히 억제하거나 배제해야 할 요소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도덕론집'에서 감정은 인간성의 핵심이며, 잘 다뤄질 때 리더십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교육론과 심리철학은 단순히 지적 능력이나 도덕성보다도, 감정을 얼마나 정제되고 균형 있게 표현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지도자가 분노와 공포, 자책과 불안을 어떻게 통제하고 이해하며, 다시 대중과의 신뢰로 변환시키는지를 주목했다.
 
현대의 리더는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위기를 수습하면서도 차분함을 유지해야 하고, 구성원의 불만을 들으면서도 공감과 거리를 동시에 지켜야 하며, 항상 “리더답게”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감정을 계속 억누르는 것은 리더십의 정서적 방전을 초래한다. 플루타르크는 이때 필요한 것이 감정의 정리, 곧 감정적 휴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페리클레스 전기'에서, 전염병으로 무너지는 아테네 속에서 페리클레스가 자신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하루에 일정 시간을 침묵 속에서 보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지만, 고요 속에서 가라앉고 재구성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감정의 휴식’을 위한 도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명상, 저널링, 코칭, 미술 심리 등 다양한 방법이 플루타르크적 ‘영혼의 목욕’ 역할을 대신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감정은 ‘억누르기’보다는 ‘다스리기’가 필요하고, 다스리기 위해선 반드시 ‘비워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플루타르크는 특히 글쓰기의 힘을 자주 언급하는데, 그는 키케로나 브루투스처럼 정치적 격동기에도 꾸준히 편지를 쓰고 일기를 남긴 지도자들을 통해,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은 곧 내면의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리더의 감정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과 관계, 결정과 비전의 배경을 구성하는 심리적 토대다.
리더가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감정 속에서 자기 언어를 되찾는 순간, 바로 그때가 플루타르크가 말하는 내면적 리더십의 시작점이다.
 

'플루타르크'와 리더의 휴식법

 

3. 시간의 구획화: 리더를 위한 ‘의식적 거리두기’의 미학

 
플루타르크는 시간 관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한 철학자는 아니지만, '영웅전' 곳곳에서 반복되는 테마는 바로 ‘전선과 전선 사이의 간격’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을 잠시 멈추고 예언자들과 대화하며 휴식을 취했던 장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전투 직전 며칠간 친밀한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전장을 이탈했던 시간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리더가 자신을 재정비하는 상징적 시간이었다.
 
이러한 ‘의식적 거리두기’는 오늘날 리더십 환경에서 더욱 중요해졌다. 메신저는 24시간 울리고, 메일은 끊임없이 쌓이며, 리더는 하루 중 대부분을 즉각적인 응답과 판단의 상태로 살아간다. 하지만 플루타르크가 말했듯, 진정한 영향력은 매 순간 반응하는 데서가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서 관조할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리더는 바쁠수록 ‘반응하는 시간’과 ‘생각하는 시간’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이메일 확인은 특정 시간에만 한다든지, 아침에는 조직의 전략을 재정비하는 회의 대신 혼자 사색하고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식이다. 이는 단순한 시간 관리법이 아니라, 리더십 감각을 재생산하는 주기적 리추얼이 된다.
 
플루타르크는 “가장 위대한 전략은 한발 물러나 있을 줄 아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현대 리더가 이러한 ‘간격의 미학’을 배울 때, 지속 가능하고 인간적인 리더십이 비로소 완성된다.
 

4. 사적인 쉼의 정치학: 리더가 인간일 수 있는 조건

 
'도덕론집'에서 플루타르크는 여러 차례 인간의 취미, 여가, 개인적 기쁨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그는 “인간은 공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즐거움을 느끼는 유기체”이며, “리더는 더더욱 인간다움을 유지하지 않으면 권력이 괴물이 된다”고 경고한다. 이는 오늘날 리더들이 직면한 ‘공적 역할’과 ‘개인 정체성’ 간의 균열 문제를 치유하는 중요한 열쇠다.
 
플루타르크가 특히 높이 평가한 인물 중 하나는 카토다. 그는 공화정의 엄격한 원칙주의자였지만, 와인과 서정시를 즐기며 사적인 시간에선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였다. 플루타르크는 이를 가식이라 보지 않고, 오히려 이중성 속에서 자기 회복의 균형을 찾은 인간적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현대 리더들도 조직 안에서의 역할과 개인의 삶이 완전히 혼재되어 버린 채 ‘항상 켜진 상태’로 살아간다. 이런 삶은 번아웃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감각 상실로 이어지기 쉽다.
 
리더에게 필요한 쉼은 단지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를 되찾기 위한 시간이며, 조직이 요구하는 ‘리더’라는 가면을 벗고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는 고요한 회복의 장소다. 플루타르크는 “위대한 사람일수록, 사적인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곧 공적 책임을 오래도록 버티게 해주는 인간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리더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전략’이 아니라 ‘쉼’일 수 있다. 플루타르크의 글은 그들에게 조용히 말한다.
“너 자신을 잠시 내려놓아라. 그때 너는 더 나은 리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