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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질서의 기원(헤로도토스)'로 본 글로벌 커넥션

by lee-niceguy 2025. 5. 4.

1. 경계의 탐사자: 헤로도토스와 초국적 시선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종종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동시에 그는 ‘경계의 탐사자’였다. 그의 '역사'는 단지 전쟁의 기록이나 사건의 연대기가 아니라, 문화와 질서가 어떻게 발생하고 충돌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하는가를 탐구하는 일종의 문명 보고서다. 그는 이집트, 페르시아, 스키타이, 리디아, 바빌론 등 당대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거나 취재하며, 그들의 관습, 신화, 정치 체계, 언어, 전쟁 양식까지도 꼼꼼히 기록했다. 그가 그리스 중심의 시각을 견지하면서도, 타자들의 문화를 ‘기이한 것’으로만 보지 않고 상호 이해의 프레임으로 가져온다는 점에서 이미 그는 고대 세계의 글로벌리스트였다.

 

오늘날 글로벌 커넥션은 국경을 넘는 물리적 이동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초국적 감정 공유, 문화의 동시다발적 유통 속에서 재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결은 종종 서로를 오해하거나 왜곡하며, 지식과 권력이 불균형하게 분배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때 헤로도토스의 탐사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단지 정보의 수집자가 아니라, 이질성을 해석 가능한 질서로 엮으려는 스토리텔러였다. 오늘날 우리가 글로벌 커넥션 속에서 해야 할 일도 바로 이 해석과 재구성의 작업이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가 유동적임을 받아들이고, 타인의 틀 안에서 세계를 잠시 살아보려는 용기를 의미한다. 헤로도토스는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에겐 미신이거나 야만이 될 수 있다’는 상대주의의 틀 안에서, 질서란 상호 교차 속에서만 발생하는 서사 구조임을 일깨웠다.


오늘날 글로벌 커넥션이 단순한 네트워크를 넘어 ‘공존의 기술’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헤로도토스적 시선, 즉 복수의 질서를 직조하는 내러티브 감각이 절실하다.

 

2. 차이의 관찰자: 문화 상대성과 현대 다중 정체성

 

헤로도토스는 '역사'에서 여러 민족의 관습을 비교하며, 그들 각자의 세계관을 무시하지 않고 분석적 거리 두기 속에서 기록한다. 예컨대 그는 이집트인이 매장 문화를 신성시하고, 스키타이인은 시체를 조각내어 땅에 묻는 관습을 갖는다는 사실을 나열하면서, 이를 단순한 미개함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그는 이질적인 문화를 서열화하지 않고, 차이를 구조화된 질서로 이해하는 시도를 했다. 이것은 단순한 관용이 아니라, 문화적 존재가 근본적으로 조건적임을 인정하는 철학적 태도였다.

 

이 관점은 오늘날의 글로벌 커넥션 속 ‘다중 정체성’ 문제와 깊이 연결된다. 디지털 시대의 인간은 국적, 언어, 계급, 가치관의 다층적 층위 속에서 살아간다. 한 개인은 아침엔 한국어로 출근하고, 오후엔 영어로 회의하며, 저녁엔 유튜브에서 스페인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러한 동시적 다중성 속에서 우리는 어느 하나로 자신을 규정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런데 바로 이때, 우리는 자주 불안을 느낀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무엇인지가 흔들릴 때, 연결은 축복이 아니라 혼란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는 차이를 기록하면서도, 그 차이가 단절이나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새로운 이해의 언어를 생성하는 촉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타자의 관습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질문으로 되묻는 방식으로 교차적인 인식의 틀을 창출했다. 이 점에서 그는 오늘날 ‘글로벌 시민’이 되기 위한 사고의 선례를 제공한다.


다중 정체성은 위험한 균열이 아니라, 더 정교한 자아 설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커넥션은 나와 너를 혼합시키는 게 아니라, 너의 틀 안에서 나를 다시 생각해 보는 운동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헤로도토스적 상대주의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질서의 기원(헤로도토스)'로 본 글로벌 커넥션

 

3. 전쟁과 공감: 분열의 동력 속 연대의 기술

 

'역사'의 중심 서사 중 하나는 바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다. 헤로도토스는 이 전쟁을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페르시아의 영토 확장과 그리스 도시국가의 독립 정신을 서사화하면서도, 양측의 영웅과 전략, 문화와 두려움을 동등한 시선으로 기록한다. 특히 페르시아 측 장군 크세르크세스의 두려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의 인간적 동요 등은 ‘적의 인간화’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헤로도토스는 싸움의 원인을 단지 ‘욕망’이나 ‘침략’으로 환원하지 않고, 이해되지 못한 질서 간의 충돌로 서술한다.

 

이 방식은 오늘날의 국제 갈등과 글로벌 커넥션이 겪는 모순을 떠올리게 한다. 국경을 넘는 정보와 자본, 기술은 빠르게 흐르지만, 가치의 충돌과 정서의 균열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공감 자본’은 연결망을 통해 확대되기보다는, 이해 부족과 편향된 정보 흐름 속에서 왜곡된 감정의 전파로 치닫기도 한다. 디지털 전쟁, 문화의 동조 압력, 정체성 기반의 적대성은 바로 이 공감의 균열에서 발생한다.

 

헤로도토스는 전쟁을 서술하면서도, 공감을 회복할 수 있는 장면들을 교묘히 배치했다. 그는 상대방의 서사를 이해하고, 다른 질서의 윤리를 음미할 수 있는 묘사력을 보여줌으로써, ‘정보의 연결’이 아닌 ‘이해의 연결’을 꾀했다.


오늘날 우리가 글로벌 커넥션을 통해 꿈꾸는 것은 단순한 네트워크가 아니라, 다른 진실을 존중하는 감정의 기술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단지 연민이 아니라,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 즉 맥락화의 감수성이다. 글로벌 커넥션은 전쟁처럼 파괴적일 수도 있고, 동시에 헤로도토스처럼 서사를 품은 연대의 가능성도 열어줄 수 있다.

 

4. 질서의 재구성: 네트워크 시대의 새로운 사유 방식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 기록이 아니라, 무너진 질서 이후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기억하고 구조화할 것인가에 대한 시도였다. 그는 크로이소스 왕의 몰락, 바빌론의 몰락, 페르시아의 제국화 등 권력의 흥망을 반복해서 서술하며, “질서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 유동성 위에 구축된 우연의 결정체”임을 드러낸다. 이런 인식은 오늘날 글로벌 커넥션이 갖는 ‘질서의 불안정성’을 해석하는 데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와 글로벌 자본, 초국적 이주와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질서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국면에 놓여 있다. 기존의 국경, 계급, 언어, 가치 시스템은 더 이상 인간의 경험을 온전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단한 통제 시스템이 아니라, 복수의 질서를 유연하게 엮어내는 연결 감각이다. 헤로도토스는 이것을 보여준다. 그는 단일한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들 사이에서 공존 가능한 구조를 구축한다.

 

오늘날 우리가 글로벌 커넥션을 통해 추구해야 할 것도 바로 이러한 질서의 유연한 직조 방식이다. 연결은 목표가 아니라 새로운 사유 방식의 조건이다. 글로벌 커넥션은 하나의 중심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중심이 공존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헤로도토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진실은 경계의 바깥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질서는 언제나 그 경계의 만남에서 다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