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67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마라탕 중독자의 고백 1. 맹세와 맛의 경계: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마라탕 한 그릇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필요하다는 믿음 아래 ‘선서’를 남겼다.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의 기준을 담은 이 선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 세계 수많은 의료인의 윤리적 나침반이 되고 있다.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해를 끼치지 않겠다.” 이 말은 단지 병원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몸’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삶의 태도가 된다. 하지만 이 맹세는 마라탕 앞에서 무너진다. 누가 뭐래도 마라탕은 매력적이다. 각종 향신료가 어우러진 얼얼한 국물, 원하는 재료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유희, 그리고 짧.. 2025. 5. 27. '명심보감'에서 배운 중고거래의 철학 성실의 미덕: 좋은 중고 거래는 진심에서 시작된다 '명심보감'의 첫 장인 ‘입교편(入交篇)’은 인간관계의 기본을 말하며, 그 핵심은 바로 성실(誠實)에 있다. “진실한 사람은 끝내 복을 얻는다(誠者終得福)”라는 구절은 단지 도덕적 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현실 속 관계에서 신뢰의 기초가 어디서 오는지를 일러주는 실천적 조언이다. 이 철학은 오늘날 중고 거래의 모든 상황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익명성이 지배하는 공간에서도, 결국 거래의 성사 여부는 서로가 주고받는 말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 중고 거래를 시작할 때 상대방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 물건 아직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네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순간부터 신뢰는 형성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 2025. 5. 26. '칼리굴라'는 왜 ‘워라밸’에 실패했는가? 1. 권력과 일의 본질: 칼리굴라의 ‘무한한 야근’ 알베르 카뮈의 희곡 '칼리굴라'는 흔히 오해되는 ‘폭군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칼리굴라는 단순한 권력의 오용자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끝까지 밀어붙인 실존적 탐구자다. 여동생 드루실라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무의미함과 죽음의 불가피성에 눈을 뜬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를 정치적 논리와 도덕적 질서를 모두 부정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는 걸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대사는 곧, 그가 ‘삶’과 ‘일’의 균형, 즉 우리가 말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철저히 무시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칼리굴라에게 황제라는 직무는 단지 국가 운영이 아닌, 자신의 실존적 분노와.. 2025. 5. 26. '직지심체요절'과 요즘 Z세대의 타이핑 속도 대결 1. 직지와 정보 속도 혁명: 금속활자의 철학과 목적 '직지심체요절'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지식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한 문명의 결정체였다. 1377년 고려 충렬왕 대에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이 금속활자본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보다 70여 년 앞섰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기술이 등장하기 전, 지식은 필사를 통해 복제되었고, 책은 권력자나 특정 계층만이 접근할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금속활자의 등장은 지식의 전파 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고, 내용의 정확성과 복제력, 보급력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직지'는 그 형식만큼이나 내용상으로도 깊은 가치를 지닌다. 단순한 불교 경전이 아니라, 수행자의 .. 2025. 5. 25.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4시간 오픈 채팅방의 공허함 1. 영원회귀 없는 대화: 오픈 채팅방이 낳는 ‘가벼운 존재’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모든 것이 한 번만 일어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변주하여, 인간 존재의 무게와 가벼움 사이의 딜레마를 풀어간다. 우리는 한 번밖에 살지 않기에 선택의 결과를 되돌릴 수 없고, 반복되지 않기에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다. 존재는 가볍고, 가벼움은 참을 수 없어진다. 이 철학적 고민은,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24시간 오픈 채팅방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서 적나라하게 재현된다. 오픈 채팅방에서는 관계가 자유롭다. 익명으로 참여하고, 즉시 나갈 수 있으며, 기록은 남지만 정체성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잠시 머물며 몇 마디 나누고 떠나며, 어떤 .. 2025. 5. 25. '대학'의 수양론, 오늘도 '마음챙김' 챌린지와 함께 1. 성찰에서 시작되는 질서: '대학'의 수양론이 말하는 변화의 출발점 '대학'은 유교 경전 가운데서도 유독 실천적 윤리와 사회적 확장을 강조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대학의 도는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는 문장은 단지 수사적 선언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 수양을 통해 외적 질서를 만들어가는 논리적 전개의 서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은 고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있어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정교한 철학 체계였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삶의 태도를 정비하는 ‘수신(修身)’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사고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요즘 사람들은 “세상이 왜 .. 2025. 5. 25.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