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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로스'와 카카오톡 이모티콘의 수사학 1. 플라톤의 수사학: '파이드로스'가 말하는 진짜 설득의 기술 '파이드로스'는 플라톤의 대표적인 대화편 중 하나로, 사랑과 말하기의 본질, 나아가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아우른다. 겉보기엔 친구인 파이드로스와 소크라테스가 사랑에 대한 리시아스의 연설문을 두고 담소를 나누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수사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핵심이다. 소크라테스는 단지 화려한 언변이나 외면적 논리 구성으로 사람을 설득하려는 기존 수사학을 비판한다. 대신 그는, 사람의 영혼과 감정 구조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만이 진정한 수사적 힘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상대방을 설득하려 할 때 단순한 정보.. 2025. 5. 24.
'서유기'의 삼장법사, 지금은 외주 기획자입니다 1. 팀워크의 혼돈 속 균형자: 삼장법사의 기획자적 리더십 '서유기'를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손오공의 화려한 전투력에 눈길이 간다. 그는 한 번 휘두르면 하늘도 쪼개는 여의봉을 가지고 있고, 변화무쌍한 분신술과 근두운을 타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저팔계는 은근히 꾀를 부리고, 사오정은 묵묵히 따르며 실무를 맡는다. 그러나 이 전대미문의 팀을 종합적으로 지휘하며 진짜 ‘완주’를 끌어낸 인물은 바로 삼장법사, 즉 현장 스님이다. 그의 무기는 검이 아니며, 방패도 아니다. 그는 말과 인내,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일관된 신념을 들고 천축국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기획하고 실현한다. 이 구조는 현대의 외주 기획자와 정확히 맞닿는다. 요즘 프로젝트 구조에서 기획자는 직접 손에 흙을 묻히는 대신, 다양한 이해관계.. 2025. 5. 24.
'바가바드 기타'와 자아 찾기 리트릿의 상관관계 전장의 고뇌와 마음의 리트릿: '바가바드 기타'의 배경과 의미 '바가바드 기타'는 고대 인도의 철학적 정수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텍스트는 단순한 종교 경전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갈등과 선택, 윤리와 자기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대화 형식의 시적 철학서다. '마하바라타'라는 방대한 서사시의 한 부분으로 등장하지만, 그 안에서 '바가바드 기타'는 독립적인 지적 우주를 구축한다. 중심인물은 전사 아르주나와 그의 전차를 모는 신 크리슈나. 이야기의 무대는 쿠루크셰트라라는 실제 전쟁터이며, 수천 명의 병사들이 양 진영으로 나뉘어 도열한 채 긴장감이 극에 달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 서사는 칼과 창, 피와 죽음이 아니라, 두려움과 정체성의 위기라는 내면의 전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아르주나는 전장을 앞.. 2025. 5. 23.
'몽유도원도'와 오늘의 무브 투 언락(unlock): 도피인가 힐링인가 1. 몽유도원도의 세계관: 이상향은 꿈에서만 가능한가 '몽유도원도'는 조선 세종 시대의 화가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토대로 그린 산수화다. ‘몽유(夢遊)’라는 말처럼, 이 그림은 현실이 아닌 꿈속에서만 도달 가능한 이상향을 그린다. 도원(桃源)은 무릉도원, 즉 속세의 고통과 번민이 사라진 이상 세계다. 거기엔 권력 다툼도, 생계의 고통도, 감정의 상처도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 도원이 잠깐 ‘유람’하는 공간으로만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안평대군은 도원 안에서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결국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며, 이로써 '몽유도원도'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불가피한 괴리, 그리고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상상 공간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인이 경험하는 ‘탈출 욕.. 2025. 5. 23.
'시경'으로 바라본 요즘 힙합 가사의 리듬과 은유 1. 고대 중국의 플로우: '시경'의 리듬 구조와 운율 기술 '시경(詩經)'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 고대인의 정서, 사회, 신화, 정치, 가족, 사랑에 이르는 방대한 감정과 이념의 아카이브였다. 주나라 초기부터 춘추 시대까지 약 500년간 민간에서 구전되던 노래들을 정리한 이 시집은, 후대 유학자들에게는 도덕 교육의 교재이자, 지배 엘리트에게는 통치의 문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원형은 어디까지나 ‘말을 노래로 만드는 기술’이었다. 리듬과 반복, 음보(音步), 운율은 '시경'의 핵심적 구성 요소였고, 단어의 선택과 배열은 단지 미적 판단이 아니라 의미의 전송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능적 전략이었다. 대표적인 예는 '시경'의 첫 작품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關關雎鳩 在河.. 2025. 5. 22.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오늘도 멘탈 코치 앱 추천 1위 1. 황제의 자가 코칭: '명상록'은 고대판 멘탈 앱이었다 2세기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명상하고 반성하며, 자기감정을 글로 다듬는 철학자형 통치자였다. 오늘날로 치면 로마 제국이라는 초국가를 운영하면서도, 밤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자기감정을 정리하듯 글을 남기는 CEO이자 정신 수양자였다. 그의 대표작이자 사후에 편집된 '명상록(Meditations)'은 출판을 의도한 저작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을 단련하고 달래기 위한 내면의 코칭 노트였다. 마르쿠스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을 설득하고, 다잡고, 다스렸다. 이는 마치 오늘날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멘탈 케어 앱’의 구조와 기능과 유사하다. '명상록'의 핵심은 타인을 향한 메시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 2025.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