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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예치주의와 모던 워킹맘의 ‘육아 시뮬레이션’ 1. 예치주의의 핵심: 순자의 ‘질서’ 철학은 왜 필요한가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본 맹자와는 정반대 입장에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며 감정과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순자는 동시에 인간에게는 배움과 습관을 통해 선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예(禮)’, 즉 도덕적 규범과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 제도다. 순자는 자연적인 감정의 흐름만으로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고, 반드시 엄격한 훈련과 규칙의 내면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예치주의’는 이러한 순자의 철학이 통치와 교육, 나아가 인간관계 전반에 적용되는 방식을 말한다. 예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 2025. 5. 21.
'팔만대장경'과 구글 드라이브 백업 중독의 유사점 팔만대장경의 탄생: 불안의 시대가 만든 집단 백업 프로젝트 13세기 고려는 문자 그대로 혼돈의 시대였다.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국토는 유린당하고 백성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침입은 단발이 아닌 반복이었다. 물리적인 방어도, 정치적인 협상도 모두 지지부진한 가운데, 사람들은 어느 순간 깨닫는다. “몸은 피할 수 없더라도, 정신은 지켜야 한다.” 바로 이 절박한 의식 속에서 팔만대장경의 대작업이 시작된다. 고려는 불교를 통한 정신 수습과 문화적 구심점을 마련하기 위해, 경전을 목판에 새기고 후대에 전하기 위한 거대한 ‘복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나무에 새긴 글자 하나하나가 단순한 텍스트를 넘어선 민족의 불안에 맞서는 집단 기억의 정수였던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경전을 요약한 ‘종교적 콘텐츠’가 아니.. 2025. 5. 21.
'열하일기'는 사실 가장 센스 있는 ‘퇴사 후 여행기’였다 1. 열하로 간 이유: 연행사의 탈을 쓴 리셋 여행 '열하일기'는 흔히 외교 사절단의 기행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박지원 개인의 내면적 회복과 자기 정립의 여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서 치열한 지적 모험을 해왔던 그는, 사대부 집안 출신이라는 배경과 당시 성리학 중심 사회의 보수성 속에서 여러 벽에 부딪혔다. 특히 정치적으로 실각한 상태였던 그는 중앙 정계로 복귀할 명분도 동력도 잃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청나라로 가는 연행사 참여는 단순한 외교 임무를 넘어서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잠시 물러나 자신의 숨을 고르는 시간, 즉 현대적으로 말하면 '퇴사 후 충전 여행'이자 이직 없는 휴식 선언이었다. 그의 출발은 확신에 찬 행진이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기대가 뒤섞인 출정이었다. .. 2025. 5. 20.
'베오울프'는 결국 방 탈출 게임의 원형이었다 1. 베오울프의 구조적 서사, 방 탈출 게임과 닮았다 영문학 최초의 서사시라 불리는 '베오울프'는 겉으로 보기엔 고대 게르만 전사의 용맹담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운 현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베오울프가 싸우는 세 가지 주요 적(그렌델, 그렌델의 어머니, 그리고 마지막 드래곤)은 단순한 괴물의 나열이 아니라, 단계별로 설계된 일종의 ‘스테이지’에 가깝다. 이 각각의 적은 특정 공간, 특정 규칙, 특정 전략을 요구하며, 클리어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방탈출 게임의 전형적인 구성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베오울프의 서사 구조는 단순한 이야기의 흐름이 아니라, 플레이 가능한 서사적 퍼즐로 읽힌다. 우선, 이야기의 시작에서 베오울프는 덴마크 왕국의 궁정인 .. 2025. 5. 20.
'데카메론'과 전염병 시대의 밈(meme): 바이러스보다 빠른 이야기 1. '데카메론'의 프레임: 검열 대신 농담이 살아남았다 14세기 중반, 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덮쳤을 때 사람들은 절망과 공포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는 전염병을 피해 피렌체 외곽 별장에 모인 10명의 청년 남녀가 열흘간 매일 한 편씩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구조의 이야기 집, '데카메론'을 완성한다. 이들은 현실의 참혹함을 잠시 잊기 위해, 사랑과 욕망, 지혜와 기지, 실수와 용서를 주제로 총 100편의 이야기를 엮어낸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들이 단순한 시간 때우기나 위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공포에 맞서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자, 검열보다 빠르게 퍼지는 사회적 대화 방식이었다. '데카메론'은 단순한 고전 문학이 아니라, ‘이야기.. 2025. 5. 20.
'묵자'의 겸애사상이 배달 리뷰 댓글에 적용된다면? 1. 묵자의 겸애사상과 현대 배달 리뷰 문화의 만남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사상가 묵자(墨子)는 당시 지배적이던 유가(儒家)의 가족 중심적 윤리를 비판하며, 누구든 혈연이나 친소 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兼愛)사상을 주장했다. 그가 말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실천적 도덕이었다. 묵자는 “차별적 사랑(별애)이 갈등과 전쟁을 낳는다”고 보았고, “모두를 고르게 사랑하는 겸애야말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묵자의 철학은 당대에는 급진적으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의 공동체 윤리와 비교해 보면 오히려 선구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이제 이 고대의 사상을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배달 앱의 리뷰 문화에 대입해 보자. 우리.. 2025.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