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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열하일기'는 사실 가장 센스 있는 ‘퇴사 후 여행기’였다

by lee-niceguy 2025. 5. 20.

1. 열하로 이유: 연행사의 탈을 리셋 여행

 

'열하일기'흔히 외교 사절단의 기행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면에는 박지원 개인의 내면적 회복과 자기 정립의 여정오롯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서 치열한 지적 모험을 해왔던 그는, 사대부 집안 출신이라는 배경과 당시 성리학 중심 사회의 보수성 속에서 여러 벽에 부딪혔다. 특히 정치적으로 실각한 상태였던 그는 중앙 정계로 복귀할 명분도 동력도 잃고 있었다. 이런 그에게 청나라로 가는 연행사 참여는 단순한 외교 임무를 넘어서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잠시 물러나 자신의 숨을 고르는 시간, 현대적으로 말하면 '퇴사 충전 여행'이자 이직 없는 휴식 선언이었다.

 

그의 출발은 확신에 행진이 아니라, 복잡한 감정과 기대가 뒤섞인 출정이었다. 우리가 퇴사 여행을 결심할 때처럼, 연암도 떠나기 수많은 현실적 계산을 했을 것이다. 가족, 생계, 명분, 그리고 돌아왔을 감당해야 할 ‘후’무게. 그러나 그는 결국 떠났다. 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라도 바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열하일기'단지 출국 보고서가 아니라, 이상 안에서 없으니, 밖으로 나가 보겠다”선언으로 읽힌다.

 

그가 출발한 길은 오늘날 항공권을 끊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말과 수레, 협곡과 사막, 낯선 언어와 기후, 불편한 숙소와 낮은 위계. 그러나 모든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연암은 여행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히 조선 사회에 대한 불만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퇴사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현대인이 그러하듯, 연암 역시 ‘이대로는 되겠다’판단 아래 자신이 몰랐던 자신을 마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조선을 벗어난 그저 땅을 건넌 것이 아니라, 관점의 틀을 깨기 위한 감정적 도약이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박지원이 여행을 통해 단지 외부를 관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기록하며 자신의 감정을 꼼꼼하게 남겼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퇴사 여행자들이 일기를 쓰고, 브런치에 연재하고, 유튜브 브이로그를 올리는 행위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의 고민과 감탄, 회의와 흥분을 전부 글로 남겼고, 그것이 바로 기록으로 남은 ‘퇴사 여행기’원형되었다. '열하일기'결국 자신에게 보내는 질문장이었고, 세상에 건네는 자기표현의 가장 정제된 형식이었다.

 

'열하일기'는 사실 가장 센스 있는 ‘퇴사 후 여행기’였다

 

2. 관찰자의 시선: 유배 아닌 자유의 감각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단순히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비교하고, 풍자하며, 결국 자기 언어로 다시 쓴다. 나라의 사절이자 학자로서 그는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참여하는 여행자, 오늘날로 치면 “인스타 감성 여행자”아니라 “노트북을 다큐멘터리 제작자”가깝다. 그는 청나라의 발전된 상업, 도시 풍경, 인물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조선과의 차이를 냉철하게 지적한다. 방식은 여행기를 가장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리포트가깝고, 때론 조선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전언(傳言)형식을 띤다.

 

이처럼 '열하일기'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 직면을 위한 여행이었다. 오늘날의 퇴사 여행자 많은 이들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관찰하고 삶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고민하며 돌아온다. 연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열하의 상인 문화를 보며 조선의 폐쇄적 신분제를 비판하고, 청의 과학기술에 경탄하며 조선의 보수적 학문 풍토를 냉소한다. 특히 '열하의 장터에서 관찰한 상인의 태도'오늘날 우리가 해외에서 만나는 자유로운 태도와 생산적 거래, 그리고 열린 사회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 열하는 단순한 타국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정체된 세계와 자신을 비교하는 거울이었고, 동시에 새로운 가치 체계에 대한 실험실이었다. 연암은 그곳에서 타인을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았고, 기록을 통해 독자들에게 조선이라는 체제의 경직성과 답답함을 통찰하라고 요구했다. 오늘날의 퇴사 여행이 새로운 도시의 질서, 거리의 속도,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우리 삶의 위치를 재조정하듯이, '열하일기'자신과 세계 사이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치열한 정신적 실험이었다.

 

3. 유머와 허무, 여행에서 태어난 진짜 목소리

 

'열하일기'무겁고 근엄한 정치·철학적 논문이 아니다. 그것은 거리의 잡음, 사람들의 헛기침, 말장난과 날씨에 대한 푸념까지 담긴 살아 있는 텍스트다. 박지원은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관찰자이자 생활형 스토리텔러였다. 그는 여행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의 표정과 어조, 말실수와 얄팍한 꼼수를 흥미롭게 포착하며, 안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담아냈다. 오늘날로 치면, 트위터의 밑에 달리는 통찰력 있는 댓글처럼, 그의 글은 편의 유머 속에 시대 전체의 모순과 삶의 진실을 엿보게 한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 하나는 허생전”전사로 해석되는 상인의 기지관련된 에피소드들이다. 연암은 똑똑하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비 대신, 삶의 현장에서 수완 있게 살아가는 상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오늘날 퇴사자들이 기존 조직 문화를 벗어나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 크리에이터의 삶을 택하는 흐름과도 닮아 있다. 기존 시스템 밖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보려는 인간의 도전. 연암은 이를 유머로 녹였지만, 유머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사회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성찰이었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경직성을 찢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열하일기'유머는 결국 허무로 이어진다. 그는 청의 번영과 도시의 역동성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선 사회에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식한다. 마치 오늘날 여행지에서의 감탄이 현실로 돌아왔을 공허함으로 바뀌듯, 연암 역시 돌아오는 길에 남모를 무게를 안고 있었다. 열하에서 것, 느낀 것, 얻은 감정의 진동은 조선의 굳건한 체제 앞에선 "단지 사람의 감상"으로 취급될 뿐이라는 자각그에게 깊은 회의감을 남겼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더욱 웃는다. 깊이 깨달은 사람일수록, 삶을 너무 진지하게만 다루지 않는 법이다. '열하일기'유머는 체념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겠다는 결의다. 퇴사 여행자들이 돌아와 “역시 한국은 살기 힘들어”라고 말하면서도 다시 이력서를 열고, 블로그를 쓰고, 루틴을 짜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지원은 웃음으로 정리했고, 오늘의 우리는 ‘콘텐츠’정리한다. 허무를 의미화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의미 덕분에 우리는 다음 여정을 계획할 있게 된다.

 

4. '열하일기'여행기인가, 자기 선언문인가

 

결국 '열하일기'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다. 그것은 박지원이라는 인간이 조선이라는 시대에 제출한 유서이자, 퇴사 자기 선언문이다. 연암은 여행을 통해 세계를 다시 보았고, 자신을 낱낱이 해부했으며, 모든 사유와 감정을 편의 글로 응축했다. 퇴사 여행이 단순한 쉼이 아니라, 삶의 리셋 버튼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글을 통해, 말과 사유를 통해 자신을 통과시켜야 한다. '열하일기'모든 과정을 온전히 담아낸 드문 기록물이다.

 

오늘날의 여행기들이 “여기가 인생 맛집이에요”라고 끝날 때, '열하일기'는 “여기서 인생을 다시 생각했다”말한다. 그리고 말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세계를 돌아보고 돌아온다는 건, 결국 나를 다시 조립하겠다는 뜻이다. 연암은 조선이라는 낡은 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했고, 상상의 결과물을 독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열하일기'그래서 역사상 가장 센스 있는 ‘퇴사 여행기’다.

 

그가 걸었던 길, 관찰했던 장면, 웃었던 포인트, 돌아온 느낀 허무감, 모든 것이 순간 퇴사하고 제주행 티켓을 끊는 우리와 맞닿아 있다. 어쩌면 오늘날의 여행 에세이들은 모두 '열하일기'발췌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얼마나 멀리 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다녀왔느냐다. 연암은 깊이를 글로 남겼고, 우리는 깊이에서 오늘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