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치주의의 핵심: 순자의 ‘질서’ 철학은 왜 필요한가
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 순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본 맹자와는 정반대 입장에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며 감정과 욕망에 휘둘리는 존재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순자는 동시에 인간에게는 배움과 습관을 통해 선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예(禮)’, 즉 도덕적 규범과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 제도다. 순자는 자연적인 감정의 흐름만으로는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고, 반드시 엄격한 훈련과 규칙의 내면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예치주의’는 이러한 순자의 철학이 통치와 교육, 나아가 인간관계 전반에 적용되는 방식을 말한다.
예는 단순한 예절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휘청이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구조적 버팀목이며, 개인의 충동을 억제하고 사회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프로그래밍 된 질서다. 순자에게 예는 생존을 위한 규칙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오늘날 이 관점은 많은 이들에게 ‘엄격하다’, ‘과도하게 형식적이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혼란과 예측 불가능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예는 오히려 안정을 주는 프레임이 된다.
이런 철학은 특히 현대 워킹맘의 육아 현실과 놀랍도록 맞닿아 있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야 하는 워킹맘에게 하루는 끊임없는 변수의 연속이며, 아이의 요구, 회사의 일정, 가정의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내 감정대로 반응했다가는 전부 망가진다’는 위기의식이 상존한다. 순자가 말한 예는 바로 그런 순간에 유용하다. 육아는 감정을 다루는 일이 아니라 감정 위에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아이는 매일 새로운 감정과 요구를 들고 오지만, 부모는 이를 감당하기 위해 매뉴얼화된 반복, 일관된 반응, 훈련된 절제를 통해 균형을 유지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결국 ‘인간 본성에 대한 매일의 재확인’이기도 하다. 아이는 자주 이기적이고, 감정적이며, 예고 없이 행동을 바꾸고, 지시를 무시하며, 욕구를 통제하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순자의 성악설을 뒷받침하는 사례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에게 예를 가르치고, 습관을 들이고, 절제와 질서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설명하며 ‘길들임의 일상’을 살아간다. 이는 단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법이기도 하다. 순자의 예치주의는 워킹맘이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보존의 철학적 구조와 정확히 닮아 있다.
2. 육아 시뮬레이션의 구조: ‘규칙 없는 무질서는 감정의 파산’
현대의 워킹맘은 직장에서 요구되는 성과와 가정에서의 돌봄 노동을 동시에 감당하는 이중 노동의 주체다. 하지만 이중 노동보다 더 고된 것은 바로 ‘예측 불가능한 삶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해야 한다’는 정신적 과부하이다. 아침 6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그녀는 기계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고, 아침을 준비하고, 유치원 준비물을 챙기고, 아이의 기분을 달래며 옷을 입히고, 때로는 울음을 달래는 동시에 자신의 화장을 해야 한다. 이 일련의 행위는 단지 ‘육아 루틴’이 아니라, 순자식으로 말하면 ‘질서 속 행위 훈련’이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프로토콜을 따르는 것이다.
이때 모든 변수는 워킹맘의 뇌에서 시뮬레이션 시나리오로 처리된다. “아이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 → 밥을 거부할 우려 80% → 이유식을 다른 방식으로 제공 → 실패 시 간식으로 대체.” 이런 사고는 군사 작전이나 비즈니스 로직이 아니라, 매일 아침 육아에서 반복되는 실전 운영 매뉴얼이다. 순자가 말한 ‘예’가 바로 이런 것이다. 감정을 기준으로 대응하지 않고, 반복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체계를 기준으로 행동하는 것. 감정이 앞서면 짜증이 폭발하고, 결국 아이도, 엄마도 무너진다.
그래서 워킹맘들은 ‘육아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 상황에서 아이가 떼를 쓰면 "이럴 때는 이렇게"라고 정한 대로 반응한다. 벌점 스티커 제도, 타이머 놀이, 선택지 제한법 등은 모두 순자의 ‘예’를 현대식으로 구현한 방식들이다. 이는 아이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는 나를 구조 속에 넣으려는 노력이다. 순자의 철학처럼, 육아에서도 진정한 주체는 감정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구조에 따라 분류하고 지연시키며 반응하는 사람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단지 사랑을 주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지속적인 예행연습이고, 감정과 충동을 일관된 규칙으로 다루려는 ‘예치 실험’이다. 하루가 끝나면, 워킹맘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오늘은 내가 감정으로 움직였는가, 아니면 구조로 움직였는가?”를 반성한다. 그 질문이 쌓일수록, 그녀의 육아는 더 견고한 시뮬레이션이 되고, 결국 그 안에서 그녀는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철학자가 된다.
3. 순자의 예, 워킹맘의 매뉴얼: 감정을 믿지 말고 구조를 믿어라
순자는 인간에게 감정은 있되, 감정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예’를 제시했다. 예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안전하게 배출할 수 있는 구조적 틀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이 철학은 현대 육아에서도 핵심적이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외출 전에 바지를 안 입겠다며 울어버리는 아이를 보며 무너지는 엄마의 마음은 한없이 복잡하다. 사랑과 짜증, 미안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이 순간, 워킹맘은 감정이 아니라 습관화된 ‘반응 방식’을 통해 육아를 이어간다.
그래서 ‘말귀 알아듣는 4살’이 되기 전까지 워킹맘의 일상은 거의 행동 시나리오에 따른 자동 응답 시스템에 가깝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밥 안 먹을 때 → 한 번 유도 → 5분 뒤 타이머 설정 → 그래도 안 먹으면 정리’ 같은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기 위한 방어선이다. 바로 이 점에서 순자의 예치주의는 육아에서 감정적 후회를 줄이고, 효율과 자기보존을 높이는 전략으로 작동한다. 예는 개인감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제시간에 맞게 배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질서 장치였다.
오늘날의 워킹맘들은 말한다. “육아는 체력 싸움이 아니라 멘탈 싸움”이라고. 멘탈이란 결국 예측 가능성과 통제력의 총합이다. 예가 없는 육아는 감정에 의존하게 되고, 감정은 피로 속에서 항상 왜곡된다. 그 결과는 후회와 자기혐오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감정이 아닌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누군가 대신 설계해 주지 않는다. 각 가정의 사정과 아이의 성향에 따라 워킹맘은 자신만의 ‘작은 예법 체계’를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수정한다. 이 실천이야말로 오늘날 순자의 철학이 살아 있는 지점이다.
4. 예치에서 회복으로: 육아는 자기 통제의 시뮬레이션이다
순자의 철학은 결국 ‘사람은 길들여져야 인간다워진다’는 전제 위에 있다. 그러나 그 길들이는 과정은 결코 타인의 통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예를 내면화하고, 내적 질서를 만들어낼 때 진짜 인간됨이 시작된다는 것이 순자의 핵심 철학이었다. 이 지점은 육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를 길들이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 육아라는 혼돈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워킹맘은 오늘도 수많은 변수를 통제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일어난다. 루틴을 짜고, 감정을 관리하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오류를 줄인다. 이 과정은 단순히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한 일종의 철학적 실천이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했지만, 동시에 인간은 배울 수 있고, 훈련될 수 있으며,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무너지고 실패하지만, 점차 워킹맘은 ‘감정이 아닌 원칙, 기분이 아닌 리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리듬은, 결국 삶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 된다. '순의' 예치주의는 더 이상 고대 국가의 통치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대 여성들의 철학적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그들은 예를 통해 아이를, 가족을, 그리고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그 훈련은 매일 반복된다. 순자의 ‘예’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었다면, 오늘의 ‘육아 예법’은 엄마를 무너지지 않게 만든다.
그러니, '순자'는 사실 모든 워킹맘의 필독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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