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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해석한 직장 내 권력관계

by lee-niceguy 2025. 4. 23.

1. 노동과 권력의 출발점 - 자본주의적 직장 구조의 유물론적 분석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제시한 역사 및 사회 분석의 핵심 틀로, 사회는 물질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며, 계급 간 모순이 역사의 원동력이라는 이론이다. 이 관점에서 직장은 단순한 노동 공간이 아닌, 생산수단의 소유자(자본가)와 노동력 제공자(노동자) 간의 모순과 긴장이 응축된 장소다. 직장의 조직도, 인사제도, 평가 시스템 등은 모두 이 권력구조를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며, 개인의 성과보다 구조적 위치가 권력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실무자와 관리자의 관계는 단순한 업무 지시와 수행의 관계가 아니라, 생산수단(예산, 시간, 의사 결정권)의 통제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관리자 혹은 임원은 노동력을 직접 생산하지 않더라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에 놓여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적 기업 내 위계 구조가 본질적으로 계급 분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지점에서 직장 내 권력관계는 단순히 능력이나 성실성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오히려 제도적 틀에 의해 구성되는 관계적 권력의 산물로 이해된다.
 
따라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직장 내 권력관계는 ‘누가 열심히 일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생산수단과 구조적 권한을 통제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직장에서 종종 성실하고 유능한 직원이 조직 내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관리자와의 관계나 제도에 편승한 자가 더 많은 권력을 가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철학적 분석 틀이 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해석한 직장 내 권력관계

 

2. 모순과 갈등의 변증법 - 직장 내 권위의 재생산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회의 발전이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즉, 주어진 체제 내에 존재하는 상반된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그 충돌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직원들은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혹은 팀 간 협력과 경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갈등은 때때로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지만, 실상은 구조적으로 유도된 ‘내부 모순’이다.
 
예를 들어, 상사는 팀워크를 강조하지만 동시에 개별 평가를 통해 인센티브를 분배한다. 이는 협업을 요구하면서도 경쟁을 조장하는 모순 구조를 내포한다. 변증법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실수나 정책의 미비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내재적 전략이다. 즉, 일정 수준의 갈등과 긴장이 계속 유지되도록 설계된 권력 시스템이다. 이러한 구조는 노동자의 정서적 피로와 무기력을 야기함과 동시에, 체제에 대한 도전을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 억압으로 작용한다.
 
마르크스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의식을 제어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활용한다고 봤다. 현대의 직장에서도 ‘성장’, ‘자기 계발’, ‘성과 중심주의’와 같은 언어는 노동자 스스로 체제를 정당화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상사의 부당한 요구나 비효율적인 구조조차 ‘내가 아직 부족해서’라는 자기반성으로 귀결되는 구조는, 결국 권력의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 이는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체제는 자신을 방어하고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3. 의식과 소외 - 직장 내 ‘자아 상실’의 유물론적 해석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소외(alienation)’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생산물, 노동 과정, 타인,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고 주장했다. 직장에서의 소외는 단지 업무의 고됨을 넘어서, 자신이 행하는 노동이 스스로의 자아를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과 분리되는 경험을 의미한다. 이는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라거나 “일이 내 삶의 일부가 아닌 기계적인 반복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감정의 철학적 배경이다.
 
직장에서 이뤄지는 ‘성과 중심’의 문화는 구성원을 특정 수치로 환원시킨다. 이 수치는 KPI, 평가 점수, 상대 순위 등으로 나타나며,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기능적 수단으로 대상화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이러한 현상을 인간의 본질적 능력(노동력)의 사물화로 본다. 즉, 나의 능력은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을 위해, 혹은 상사의 기대에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자신의 고유한 의지와 욕망, 존재 이유를 잃어버린다.
 
또한 직장 내 관계 역시 소외를 심화시킨다. 협업은 동료애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성과 경쟁을 위한 심리적 거리두기가 만연하다. 친절한 말투 속에도 서로의 자리와 평가를 의식하게 되고, 결국 인간적인 연대보다는 불안과 경계가 기본 감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가 낳은 조직 내부의 인간관계 구조가, 본질적으로 불신과 상호 감시를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4. 해방의 가능성 - 직장 권력구조의 전복은 가능한가?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단순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해방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체제 내부의 모순이 결국 새로운 체제로 이행을 유도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직장 내 권력관계도 변화 가능한가? 대답은 '예'지만 그 방법은 단순하지 않다. 직장 내 권력은 단지 상사와 부하의 문제를 넘어서, 제도, 문화, 언어, 규범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구조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변화는 이 희망을 현실로 바꿔가고 있다. 수평적 조직 문화, 사내 익명 커뮤니티, 공정한 인사 평가제도 도입, 감정노동 보호법, 조직 내 권력 감시 제도 등은 모두 기존 권력구조를 비판하고 재편하려는 움직임의 결과물이다.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무조건적 복종을 정당화하지 않으며, 자신의 노동에 대한 가치, 권리, 존중을 요구한다. 이들의 등장은 직장 내 권력구조에 대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구하는 흐름이다.
 
마르크스는 ‘의식화(conscientization)’를 강조했다. 즉, 노동자가 자신이 처한 조건과 체제의 구조를 인식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직장 내 권력관계도 마찬가지다. 구조를 내면화한 권위가 아닌, 열린 대화와 비판적 사고를 통해 만들어지는 수평적 관계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우리에게 말한다. 권력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그것은 모순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직장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 '더 나은 직장'이라는 새로운 변증법의 출발선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