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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루소의 '사회계약론'으로 본 댓글 창 논쟁

by lee-niceguy 2025. 4. 23.

1. 사회계약의 시작과 디지털 광장 - 댓글 창은 새로운 공론장인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자유, 그리고 사회적 억압에 대한 철학적 문제 제기였다.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개인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는 타인의 침해로부터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계약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사회계약'이라 부르며, 시민들이 각자의 자연적 권리를 공동체에 양도함으로써,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참여하는 정치 공동체의 탄생을 설명한다.
 
이러한 사회계약적 사고는 디지털 시대의 댓글 창(comment section)이라는 공론장 개념과 흥미롭게 맞물린다. 인터넷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개방형 의견 공유의 장을 만들어냈고, 누구나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이 공간은 일종의 디지털 시민사회처럼 작동한다. 특히 유튜브, 인스타그램, 네이버 뉴스 등 다양한 플랫폼의 댓글 창은 현대인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비판하며, 공감하거나 반박하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공간은 사회계약 없이도 민주주의의 한 단면처럼 작동하지만, 과연 실제로는 어떠한 규범과 구조 속에서 움직이는가?
 
루소는 정당한 권위는 오직 '모든 사람의 동의'를 기반으로 성립된다고 보았다. 댓글 창이라는 공간은 겉으로 보기에 모든 이가 평등한 발언권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익명성과 알고리즘, 그리고 플랫폼 규칙이라는 비가시적 권력이 이 '디지털 사회계약'의 실제 작동을 결정짓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와 ‘의사표현의 평등성’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댓글 창이라는 현실적 플랫폼 구조에 적용하며 질문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진정한 공공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가? 아니면 일방적 발언의 축적에 불과한가?”
 

루소의 '사회계약론'으로 본 댓글 창 논쟁

 

2. 일반의지와 댓글의 다수성 - 다수가 곧 정의인가?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라는 개념을 통해, 공동체의 진정한 이익을 대표하는 의사를 설명한다. 이는 단순히 모든 개인의 의견을 더한 합계가 아니라, 전체를 위한 객관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의 집합이다. 일반의지는 다수의 의견과 항상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수의 욕망과 구분되는 고차원적 의지로서 기능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루소가 다수결 원칙 자체를 신뢰한 것이 아니라, 공공선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의견인지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댓글 창 논쟁에서 우리는 종종 ‘좋아요 수’나 ‘동의 댓글 수’ 등을 통해 어떤 의견이 정당하고, 다른 의견은 틀렸다고 단정짓는 오류를 범한다. 하지만 이것은 루소적 관점에서 보면 일반의지의 착각이다. 인기 댓글이 항상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감정적 호소, 선동, 언어의 자극성에 의해 다수가 몰리는 구조일 수 있다. 루소는 일반의지가 존재하려면, 모든 시민이 정보를 충분히 알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며, 타인의 이익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댓글 창은 정보의 질이나 철학적 숙고 없이, ‘반사적 반응’이 누적되는 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특정 뉴스 기사에 대해 비판 댓글이 다수를 이루면, 그것이 마치 ‘사회 전체의 판단’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는 루소가 우려한 특수의지(Volonté de tous) - 각자의 사익을 쫓는 의견의 합일 수 있다. 따라서 댓글 창 속에서 대세처럼 보이는 의견이 곧 정당하다고 보는 시각은 민주주의를 가장한 선동의 위험성을 동반한다. 루소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이 ‘나는 옳다’가 아니라 ‘무엇이 전체에 이익이 되는가’를 끊임없이 되묻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댓글 문화가 일반의지를 형성하는 공간인지, 아니면 단순한 감정의 공명실인지 자문해야 한다.
 

3. 자유의 역설과 댓글 표현의 한계 - 익명성은 자유인가 방종인가?

 
루소는 자유를 단순한 방임 상태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법에만 복종할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선언하며, 자율적 시민으로서의 규율된 자유를 주장했다. 이것은 인간이 타인의 통제를 받지 않되, 공동체의 규칙 안에서 스스로 통제하며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루소에게 진정한 자유는 무규율의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규율화된 자유’다.
 
이 관점에서 댓글 창에서의 자유는 어떤 성격을 띠는가?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댓글 문화는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했지만, 동시에 비방, 혐오, 왜곡, 조롱, 집단 공격 등 부작용도 낳았다. 루소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시민의 자율이 아닌, 공동체를 위협하는 무책임한 언어 폭력이다. 자유는 공동체 내 책임과 균형을 가질 때만 존속 가능한데, 많은 댓글 창은 이 책임의식이 실종된 상태에서 ‘자유’라는 명분만을 휘두른다.
 
특히 루소는 시민이 공동체에 권리를 위임하는 순간, 그 권리는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체의 질서와 연동된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댓글 창에서의 표현도 공공성, 타인의 권리, 사회적 책임과 균형을 이루어야만 진정한 자유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댓글은 단지 개인의 감정을 배출하거나 타인의 인격을 훼손하는 통로로 기능한다. 이럴 때 댓글은 더 이상 자유의 공간이 아닌, 공동체적 자유를 해치는 방종의 장(場)이 된다. 루소는 이러한 ‘가짜 자유’가 공동체를 붕괴시키고, 결국 다시 강제적 규제와 억압을 불러온다고 경고했다.
 

4. 규범과 알고리즘, 그리고 새로운 사회계약 - 플랫폼은 누구의 일반의지를 따르는가?

 
루소는 사회계약의 핵심을 시민이 공동체의 주권자이자 동시에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지는 상태라고 보았다. 주권은 국민 전체에 속하며, 이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창출하고, 그것에 복종함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현대의 댓글 창은 과연 누구에게 이 권력을 위임하고 있는가? 겉으로 보기엔 자유로운 공간 같지만, 실질적으로 댓글의 노출, 삭제, 정렬, 심지어 차단까지를 결정하는 것은 ‘플랫폼’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권자다.
 
유튜브, 네이버, 인스타그램 같은 거대 플랫폼은 알고리즘에 따라 댓글을 분류하고, 추천하며, ‘가장 인기 있는 의견’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는 일종의 ‘기술 기반 통치’이며, 사용자들이 위임한 권력이 플랫폼의 코드와 관리자에게 집중된 형태다. 루소의 사회계약 이론에서 보자면, 이는 시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주권 권력의 등장이며, 플랫폼은 사회계약 밖에서 새로운 ‘왕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진정한 일반의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사회계약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댓글 창은 단지 말의 공간이 아니라, 가상 사회의 윤리와 정치가 실현되는 무대다. 그 무대의 규칙이 공정하려면, 알고리즘의 투명성, 사용자 참여형 제도, 명확한 책임 체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루소가 공동체를 위한 법은 시민이 직접 만들고, 그 법에만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디지털 공간에서도 사용자가 규칙을 감시하고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수적이다.
 
댓글 창은 단순한 부속 기능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디지털 민주주의의 축소판이며, 우리는 이 공간에서 어떤 사회계약을 맺고 살아갈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루소가 말한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사람에 의한 계약’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우리는 댓글 창이라는 작은 공간에서조차, “이 공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누구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가?”라는 루소의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