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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로크의 ‘소유권’ 개념과 NFT를 연결해본다면

by lee-niceguy 2025. 4. 22.

로크의 ‘노동’ 기반 소유권 이론 - 개인과 재산의 정당성

 

존 로크(John Locke)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핵심 인물로, 개인의 권리와 정부의 정당성에 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사상가다. 그의 대표 저작 '정부론(Second Treatise of Government)'에서 가장 중심적인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소유권(Property)이다. 로크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세상의 모든 것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만인은 평등한 자유 속에서 자원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투입함으로써 자연 상태의 사물에 가치를 부여할 때, 그것은 정당한 개인 소유가 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숲에 떨어진 사과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그것을 따서 보관하거나 가공했다면, 그 행위 자체가 노동의 흔적이자 소유의 권리를 창출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로크는 노동이야말로 인간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이며, 소유란 이 노동의 결과를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단지 ‘가지고 있음’이 아니라, ‘노력과 창의’를 들인 결과물에 대한 정당한 권리 주장이라는 점에서, 로크의 소유권 개념은 근대 자본주의와 재산권 체계의 철학적 기초를 이룬다.

 

이 개념은 단지 물리적 재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로크는 토지를 개간하거나 도구를 제작하는 육체적 노동뿐 아니라, 인간의 이성, 시간, 감정, 창의성 등을 투입하는 모든 형태의 비물질적 노동 역시 소유권을 정당화하는 요소로 보았다. 즉, 그가 말한 노동은 물리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가치 창출의 모든 형태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창작물이나 소프트웨어, 콘텐츠, 디자인과 같은 창조적 산물의 ‘소유’와 ‘저작권’ 개념에도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자산 형태인 NFT(Non-Fungible Token)와 로크의 고전적 사유가 연결될 수 있다.

 

로크의 ‘소유권’ 개념과 NFT를 연결해본다면

 

NFT와 디지털 노동 - 비물질적 창작물의 소유권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생성된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자산이다. 이미지, 음악, 영상, 트윗, 게임 속 아이템 등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콘텐츠가 고유성과 희소성을 갖는 형태로 발행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기존의 디지털 콘텐츠는 복제와 복사가 무한히 가능하다는 특성으로 인해 ‘원본’이라는 개념을 갖기 어려웠지만, NFT는 블록체인 위에 기록된 소유자, 거래 이력, 생성 시점 등의 메타데이터를 통해 유일무이한 디지털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NFT가 단순히 '파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파일을 생성한 주체의 노동과 창의력을 기록하고 정당화하는 장치라는 점이다. 창작자는 NFT 플랫폼에 작품을 업로드하고, 메타데이터를 블록체인에 기록함으로써, 그것이 자신의 ‘창조적 산물’임을 입증한다. 로크의 철학을 빌리자면, 이는 곧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진 노동시간, 아이디어, 기술, 감정이 투입된 창작을 통해 소유권을 형성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NFT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유통하고, 구매자들은 해당 작품이 ‘진품’임을 보장받으며 그에 대한 권리를 소유할 수 있다.

 

즉, 로크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는 행위를 ‘노동에 의한 소유’로 간주했다면, 현대의 창작자는 자신이 만든 디지털 이미지를 NFT로 발행하고, 그 소유와 유통의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에 남는 구조를 통해 동일한 논리를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NFT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노동-소유-신뢰’ 구조를 재구성하는 철학적 실험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산의 개념을 넘어, 로크가 구상했던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간 주체가 자신의 노동을 기반으로 정당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을 디지털 문명 속에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소유의 사회적 정당성과 NFT의 신뢰 구조

 

로크의 소유권 개념은 단순히 ‘내가 노동했으니 내 것이다’라는 주장을 넘어선다. 그는 '정부론'에서 ‘과도한 소유’와 ‘사회적 균형’의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즉, 개인의 소유권은 자연 상태에서 노동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할 정도로 축적되면 정당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크는 “자연은 누구나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자원을 제공한다”고 보았고, 개인의 소유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정당하다고 보았다. 이 점은 오늘날 디지털 경제 내 소유 구조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기준이 된다.

 

NFT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새로운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도 안고 있다. 대규모 자본이 NFT 시장을 장악하거나, 기술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은 배제되는 구조가 강화될 경우, ‘디지털 소유’는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로크는 소유권이 사회적으로 승인된 질서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했고, 이는 오늘날 NFT가 단지 기술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제도와 규범, 사회적 합의의 틀 안에서 작동해야 함을 의미한다. NFT가 단순히 ‘블록체인에 기록됐으니 내 것’이라는 논리로 통용된다면, 그 소유권은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더욱이 NFT의 본질은 기술이 아닌 신뢰 구조에 있다. NFT를 통한 소유는, 단순히 ‘누가 먼저 올렸는가’가 아니라, 그 권리를 사회와 법이 얼마나 인정하고, 타인이 그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로크는 ‘자연법’을 근간으로 개인의 권리가 형성된다고 보았지만, 그 권리가 현실 세계에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사법 체계와 공동체의 승인이라는 정치적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NFT 역시, 블록체인에 기록된 정보만으로 완전한 소유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플랫폼, 글로벌 디지털 법체계에 의해 뒷받침되는 인프라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디지털 시민사회의 탄생 - NFT는 로크적 자유의 실현인가?

 

로크에게 소유권은 단지 물건을 갖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개인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조직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며, 정치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초적 권리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것을 소유할 수 없다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았고, 이를 통해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를 가능하게 했다. 즉, 소유는 자유의 수단이자, 자율성과 책임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 맥락에서 NFT는 로크의 자유 개념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NFT는 탈중앙화된 기술 환경에서 누구든지 자신의 창작물을 등록하고, 유통하며, 그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는 기존의 중앙 집중형 플랫폼(예: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창작자가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던 한계를 넘어서, 개인이 디지털 주권을 갖는 시대의 서막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NFT는 단순한 기술 수단을 넘어 디지털 시민사회에서의 주체 형성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 로크가 시민의 재산권을 정치적 자유와 연결 지었던 것처럼, NFT는 디지털 창작자에게 ‘자신의 콘텐츠에 대한 권리’라는 정치적 표현의 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조건부다. 기술만으로는 자유를 보장할 수 없다. 로크는 자유가 ‘규율 없는 자율성’이 아니라, 질서 있는 권리 체계 안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NFT가 진정한 자유의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 플랫폼의 공정한 운영, 탈중앙화된 접근 기회의 평등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로크가 사회계약을 통해 정부 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했던 것처럼, NFT 생태계 역시 디지털 사회계약에 해당하는 윤리적·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이다.

 

결국 NFT는 단지 디지털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주권, 자유, 정의, 권력, 공동체의 문제를 모두 포함하는 디지털 시민권의 징표다. 로크가 상상했던 ‘자기 노동에 의해 형성된 세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블록체인 기반 NFT 시스템을 통해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 다만, 기술이 자유를 가능케 한다는 순진한 낙관을 넘어서, 자유가 유지되기 위한 정치적 구조와 사회적 신뢰의 설계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로크의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