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사기열전' 속 장량과 요즘 창업자들의 멘토 찾기

by lee-niceguy 2025. 4. 21.

1. 장량의 선택과 멘토십의 본질 - '사기열전'에서 배우는 시작점

 

'사기열전(史記列傳)'은 단순한 연대기가 아니다. 사마천은 역사의 흐름 속 인물들의 선택과 내면을 통해 삶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통찰하고자 했다. 그중 장량(張良)의 일화는 정치적 전략가로서의 면모 못지않게, 한 인간이 어떻게 멘토와의 만남을 통해 존재를 새롭게 조율하고 성장해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장량은 초나라 귀족으로, 진나라에 의해 가문이 멸망당한 뒤 복수를 꿈꾸며 암살을 감행하지만 실패한다. 이 좌절의 순간, 그는 은둔하며 자신을 재정비하고, 우연한 기회에 노인 황석공과 마주치게 된다.

 

황석공은 단순한 노인이 아니라, 고대 병법과 인간 심리를 꿰뚫은 은사(隱士)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장량에게 병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굴욕적인 시험을 던진다. 지팡이를 일부러 떨어뜨리고 “주워라” 명하는 황석공의 행동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이 젊은이가 감정과 자존심을 이겨내고, 진짜 배움을 감당할 그릇인가’를 시험하는 철학적 행위였다. 장량은 세 번의 수모 끝에 무릎을 꿇고 황석공의 기대에 부응했고, 마침내 '태공병법'이라는 병법서 한 권을 전수받는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제자-스승 관계의 설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궤도가 바뀌는 결정적 순간, 곧 한 인간이 ‘행동하는 존재’에서 ‘성찰하는 존재’로 탈바꿈하는 계기다. 장량은 이 만남을 통해 물리적 복수가 아닌 전략적 정치를 선택하게 되었고, 훗날 유방의 책사가 되어 제국의 기틀을 다지는 중심인물이 된다. 황석공은 단지 병법이라는 ‘무기’를 건넨 것이 아니라, 그 무기를 쓸 수 있는 ‘인격’을 함께 심어준 멘토였다. 이 점에서 장량의 일화는, ‘무엇을 배웠는가’보다 ‘누구를 통해 배웠는가’, ‘그 과정에서 어떻게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사기열전' 속 장량과 요즘 창업자들의 멘토 찾기

 

2. 창업자에게 멘토가 필요한 진짜 이유 - 방향성의 부여

 

오늘날 창업자들도 이와 비슷한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술력, 자금, 시장분석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정작 실패하는 이유는 ‘전략의 부재’가 아니라 ‘철학의 빈곤’이다. 창업의 길은 단순한 경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만드는 이 조직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되는 여정이다. 이런 질문은 혼자 고민해서 풀 수 없다. 반드시 자신보다 더 먼 길을 걸어본 누군가의 눈과 말, 침묵과 제지를 통해 비로소 제 궤도를 잡게 된다. 이것이 멘토의 역할이다.

 

장량에게 황석공은 단순히 책을 준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장량에게 생각의 프레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쳤다. 창업자에게도 멘토란 단지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나보다 더 깊게 본 사람’이다. 시장이 흔들리고, 직원이 흔들리고, 나 자신도 흔들릴 때, 옆에서 “지금은 멈춰야 한다”, “이건 네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이 방향이 너답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는 단순히 성공 여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가 어떤 인간으로 살아남을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오늘날 정보는 넘쳐난다. 클릭 몇 번이면 유명 VC들의 조언, 실패한 창업자들의 스토리, 빅테크 기업의 리더십 철학까지도 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정보들은 삶을 살아본 누군가의 눈빛과 침묵, 나를 이해한 뒤에 건네는 한마디만큼 깊게 들어오지 않는다. 멘토는 나에게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내가 묻고 있던 질문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사람이다. 장량이 황석공에게 배운 것도 바로 이런 기다림과 침묵의 미학이었으며, 그 침묵 속에서 그는 전쟁이 아니라 인물과 시기를 읽는 통찰의 전략가로 거듭났다.

 

3. 장량의 전략가적 시선과 창업자의 의사결정 프레임

 

장량은 단순한 책략가가 아니었다. 그는 유방과 항우 사이의 전쟁에서 단순한 전술을 넘어서, 역사의 흐름, 인간 심리, 권력 구조의 본질까지 읽어내며 진정한 전략가로 기능했다. 그의 유명한 말, “항우는 용맹하지만 잔인하고, 유방은 비루하지만 사람을 쓸 줄 안다”는 언급은 단순한 군사 분석을 넘어서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장량은 인물의 기질과 약점을 정확히 간파했고, 어떤 인물이 최종적으로 살아남는지에 대한 구조적 감각을 갖고 있었다. 이는 단지 ‘이길 방법’이 아니라, ‘살아남을 조건’을 이해한 것이다.

 

현대의 창업자 역시 이와 유사한 시선을 필요로 한다. 창업 초기에 요구되는 능력은 자본 유치나 제품 개발 능력일 수 있으나, 조직이 성장하고 위기에 직면할수록 리더의 통찰력과 의사결정 구조가 생존의 결정적 요소가 된다. 시장 변화, 경쟁 구도, 고객 심리, 조직 내부의 역학 등 다양한 요인이 교차하는 환경에서, 창업자는 단순히 '빠르게 반응하는 자'가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장량처럼 창업자도 결국은 ‘사람’을 읽어야 한다. 누구를 파트너로 삼을지, 어떤 투자자를 받아들일지, 어떤 고객의 피드백을 중심으로 삼을지를 판단할 때, 단순한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의 맥락을 꿰뚫는 통찰력이다. 이런 통찰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장량이 황석공과의 교류를 통해 시야를 넓혀갔듯, 창업자도 깊이 있는 멘토를 통해 다양한 프레임을 체화해야 한다. 그 멘토가 던지는 질문 한 줄이, 전략 문서 수십 페이지보다 더 강력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4. 지식의 전수가 아닌 존재의 전이 - 멘토를 고른다는 것의 의미

 

장량이 병법서를 전수받고도 권력의 중심에 머무르지 않고 은거의 삶을 택한 이유는 단순한 겸손이나 정치적 회피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황석공에게서 배운 것이 단순한 ‘승리의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병법은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균형과 조화를 읽는 수단이었고, 이를 실현한 뒤에는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었다. 이는 단지 하나의 역사적 일화가 아니라, 멘토와 제자의 관계가 지식 이상의 것을 공유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현대의 창업자들이 멘토를 찾는 이유는, 기술적 도움이나 사업 방향 조언만을 원해서가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문제는 유튜브, 블로그, 사례집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시선에서 자신을 비춰보고 싶어 한다. 멘토의 존재는 그래서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존재의 거울에 가깝다. 멘토는 창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자각하게 만든다.

 

좋은 멘토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 이후 삶의 태도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장량이 그렇게 살아냈듯이 말이다. 오늘날의 창업자도 단지 매출 곡선을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감당하고, 조직을 이끌며, 스스로를 조율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고민은 멘토의 말 속에서 시작된다. 멘토는 해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정의하게 만드는 자극의 원천이다.

 

장량은 황석공을 통해 단지 전략을 배운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좌표를 새로 설정한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멘토를 만난 창업자는 비로소 사업이 아니라 삶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그 만남은 단지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 아니라, 존재의 궤도를 수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래서 멘토는 ‘지식의 사람’이기 이전에, ‘방향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