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전(宣傳)’의 기술과 이름의 힘 - 괴벨스와 공자의 세계관 차이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으로서, 20세기 정치사에서 언어의 힘이 어떻게 전체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선전의 기술'이라는 연설과 실천적 논문을 통해 대중 심리를 조작하는 언어의 전략적 활용 방식을 집대성했다. 괴벨스가 주장한 핵심 원칙은 단순하다.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반복되고 감정을 자극하며 대중의 기억에 남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언어는 그에게 있어 사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의식을 지배하는 무기였다.
그는 “거짓말도 백 번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을 실천에 옮겼다. 유대인을 악마화하고, 독일 민족의 우월성과 피해자 서사를 주입하며, 전쟁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 괴벨스는 단어와 문장을 마치 무기처럼 배열했다. 언어는 이성적 설득의 수단이 아니라, 대중의 무의식을 겨냥하는 선동의 도구가 되었고, ‘현실을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말을 통해 현실을 재창조하는 작업’으로 탈바꿈되었다. 이처럼 괴벨스는 언어를 통해 전체주의적 현실을 설계했고, 이를 통해 대중을 무력하게 만들고 정치적 폭력을 합리화하는 데 성공했다.
2. ‘정명(正名)’과 언어의 질서 - 공자의 언어 윤리
반대로, 공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바라봤다. 그는 '논어'에서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것’을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와 악이 바로 서지 않는다.” 이 말은 단순한 문법이나 용어 사용의 문제를 넘어, 언어가 곧 사회 질서와 인간관계의 기반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자는 이름과 그에 따른 역할, 언행의 일치를 통해 사회가 안정되고, 정치가 윤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의 ‘정명’은 단지 말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도자의 책임을 이름으로부터 시작하는 정치 윤리의 구현이다.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왕다운 품위와 도리’를 갖춰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혼란이 발생한다. 즉, 공자에게 언어란 현실을 왜곡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바로 세우는 기준이자 정치적 책임의 출발점이었다. 괴벨스가 언어의 의미를 변조하고 대중을 조종하기 위한 장치로 삼은 반면, 공자는 언어를 바르게 하고 이름에 본질을 일치시켜 혼란을 예방하고자 했다. 이 대비는 단순히 동서양의 차이로 그치지 않고, 권력과 진실, 정치와 도덕이 어떻게 언어 속에서 교차하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다.
3. 정명(正名)의 정치와 언어의 도덕성 - 공자의 언어 윤리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은 단지 명칭을 제대로 사용하는 문법적 규범을 넘어, 정치와 윤리, 사회구조 전반을 아우르는 철학적 원리로 기능한다. 언어는 단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관계를 규정하고 책임을 부여하며,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중심축이라는 인식이 정명의 기초다.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 하여, 왕은 왕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명칭과 역할이 일치하지 않을 때,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사람들은 방향을 잃는다.
예를 들어, '아버지'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자식을 방임하거나 학대한다면, 이는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언어가 담은 관계의 규범을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 ‘왕’이 자기 백성을 돌보지 않고 사익을 추구한다면, ‘왕’이라는 명칭 자체가 무의미해지며, 이로 인해 사회는 정당성을 상실한 채 흔들리게 된다. 공자는 이처럼 언어와 행위가 일치하지 않을 때 국가의 기반이 무너지고, 윤리 질서가 혼란에 빠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명은 단지 언어학적 명확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신뢰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핵심 원리였다.
괴벨스가 추구한 언어는 이러한 정명의 원리와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에 있다. 그는 명칭과 본질의 분리를 전략화했고, 오히려 명칭을 조작해 사회를 통제하고자 했다. ‘자유’를 ‘통제’로, ‘평화’를 ‘정복’으로 포장했으며, ‘정의’를 ‘복종’으로 재정의하는 방식은 공자가 말한 정명의 붕괴를 그대로 현실화시킨 것이다. 그의 언어는 정직한 명명 대신 대중 심리를 조종하기 위한 ‘감정의 포장지’ 역할을 했다. 공자는 이런 언어를 ‘무도지국(無道之國)’에서나 가능한 말의 혼탁함이라며 경계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현실을 돌아보면, 정치적 언어는 종종 이러한 괴벨스식 ‘프레임 전쟁’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해고가 자유화되고,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공자의 정명 사상은 이러한 시대에 다시금 소환되어야 할 언어의 윤리적 기준선이다. 언어가 권력을 봉사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공동체의 윤리는 모호해지고, 시민의 판단은 흐려지며, 결국 사회는 불신과 왜곡 속에 침몰한다.
4. 언어의 정치성과 철학의 과제 - 우리는 누구의 언어를 따를 것인가
괴벨스와 공자, 이 두 인물은 언어를 둘러싼 전혀 다른 철학을 대표한다. 괴벨스는 말을 '사람을 움직이는 기술’로 이해했다. 그는 대중은 생각하지 않으며, 느끼게 해야 움직인다는 신념 아래, 언어를 극도로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그의 언어는 수단화되었고, 목적에 맞게 조작되었으며, 사실보다 설득력을 중요시한 정치적 무기였다. 반면, 공자는 언어를 단지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도덕적 계약으로 보았다. 언어는 신뢰를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며, 존재의 책임을 명명하는 근거였다.
이 차이는 단지 과거의 이념 대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담론이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괴벨스적 언어에 노출되어 있는가? 정치적 선전, 기업의 광고 문구, SNS 속의 프레임 싸움 속에서, 단어는 본래 의미를 잃고 조작된 감정과 이미지를 입는다. ‘노동 유연화’, ‘자율 규제’, ‘국민 통합’ 등의 표현은 말의 명분은 고귀하지만, 실제 내용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은 언어의 본질적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는 공자의 정명 철학이 왜 지금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정명’은 오늘날 철학이 감당해야 할 가장 실천적인 과제 중 하나다. 언어가 오염되고, 그 오염이 시스템에 침투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괴벨스의 언어는 빠르고 강력하지만, 진실을 파괴한다. 반면 공자의 언어는 조용하고 느리지만, 사람과 사회를 안정시키는 지속 가능성을 내포한다. 정치는 말에서 시작되고, 말은 세상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어떤 언어를 따르고 있는가? 말이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말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진실을 추구하며,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설정이다. 괴벨스적 언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사회는 언젠가 거울을 잃고, 정명 없는 정치 속에 길을 잃는다. 철학은 다시, 정명의 이름으로 언어를 바로잡고, 공동체의 책임을 재구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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