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라톤의 이상국가와 ‘반장’이라는 작은 정치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상적인 사회란 정의와 질서가 조화롭게 작동하며, 각 계층이 자신의 고유한 역할에 충실한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이 사회의 핵심은 '정의'라는 가치이며, 그 정의는 단지 법이나 제도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각 구성원이 자신의 본성을 따라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데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 이상 국가에서 최고의 통치자는 ‘철인 왕(Philosopher King)’이다. 그는 단지 권력욕이나 통제 욕망에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철학적 이해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바탕으로 지도자가 되는 존재다. 그는 지혜를 통해 진리를 알고, 절제를 통해 자신을 다스리며, 용기를 통해 공동체를 위해 옳은 판단을 내리는 이상적 인물이다.
이러한 플라톤의 철학적 통치자 개념은 정치학 강의나 국가 통치 담론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고등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도 이 개념을 흥미롭게 대입해 볼 수 있다. 특히 반장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는 학급이라는 소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실험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장은 단순히 출결을 부르거나 전달 사항을 정리하는 역할을 넘어, 학급 내 갈등을 조율하고 전체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교사와 학생 사이의 매개자가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플라톤식으로 본다면, 반장은 단순한 학생 대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조화를 위해 고민하고 책임지는 리더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이상과는 거리가 있다. 반장은 종종 가장 인기가 많거나, 유머 감각이 뛰어난 학생, 혹은 단순히 친구가 많은 학생이 맡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플라톤이 비판한 ‘감각의 민주주의’, 즉 대중의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 진짜 좋은 것으로 착각되는 오류와 유사하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다수의 환호는 언제나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경고하며, 무지한 다수가 선택하는 지도자는 공동체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도 종종 이러한 우려는 실현된다. 감정적인 호소, 유행어, 웃긴 공약으로 웃음을 사는 후보가 당선되지만, 정작 중요한 회의와 조율의 순간에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
2. 철인 왕의 조건 - 능력 vs 인기의 대결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철인왕이 되기 위해서는 ‘철학적 훈련’과 ‘영혼의 정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철학은 단지 학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끊임없는 탐구, 자신에 대한 성찰,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선(善)을 추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는 통치자란 본질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태어난 자’가 아니라, 다스리기를 원하지 않지만 공동체가 필요로 하기에 그 자리에 선 자라고 강조한다. 이는 플라톤이 강조한 '자격 기반의 정치철학'이며, 개인의 욕망이 아닌 공공의 필요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를 강조한다.
고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이런 철학적 조건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도자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성원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는가이다. 반장은 수많은 학생을 대표해 교사와 의견을 조율하고, 학급 행사와 분위기를 주도하며, 때로는 친구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선거에서는 학급 전체를 위한 고민보다는 개인의 친분, 인지도, 말솜씨 등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플라톤은 이러한 현상을 '민주정의 타락'으로 보았다. 그는 민주주의가 대중의 감정과 쾌락에 휘둘릴 경우, 결국 가장 시끄럽고 화려한 이들이 권력을 쥐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는 고등학교라는 사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선거 벽보에는 화려한 문구와 유머가 넘쳐나고, 연설은 웃음을 유도하거나 친구 이름을 나열하며 인기를 호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플라톤의 철인 왕 개념이 반장 선거에 적용된다면, 후보자는 공동체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으며,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학급을 운영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종종 '말 잘하는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 사이의 괴리를 드러내며, 플라톤이 우려한 ‘선동 민주주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3. 영혼의 세 계층 - 반장 선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을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었다. 이성(λογιστικόν), 기개(θυμοειδές), 욕망(ἐπιθυμητικόν)이다. 이성이 판단하고, 기개는 용기와 명예욕을 나타내며, 욕망은 생존과 쾌락을 추구한다. 그는 이상적인 인간은 이성이 중심이 되어 기개와 욕망을 조율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이 이론을 반장 선거에 대입해 보면, 우리는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가 이 세 요소 속에서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후보자는 때로는 진정으로 ‘좋은 반’을 만들고 싶다는 이성적 동기에서 출마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인정받고 싶다는 명예욕(기개)이나 친구의 환호를 받고 싶은 욕망이 중심이 되기도 한다. 유권자인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진지하게 반 전체를 위해 누가 가장 적합한지를 고민한다. 그러나 많은 학생은 단지 ‘친한 친구니까’, ‘재밌을 것 같아서’, 혹은 ‘나도 언젠가 부탁할 일이 있어서’라는 이유로 투표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이런 상태를 이성이 욕망과 기개의 통제를 받는 ‘혼란 상태’로 규정했으며, 이는 고등학생들의 투표 행태 속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성에 따라 올바른 사람을 선출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예측 가능한 혼란이다. 반장 스스로도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회의를 품게 되고, 반원들은 점점 무관심해지며, 반장은 역할 수행의 무게에 지쳐간다. 플라톤은 이런 상황을 ‘영혼이 제대로 조율되지 못한 상태’로 설명하며, 결국 지도자와 구성원이 모두 피로해지는 사회를 만들게 된다고 경고한다. 고등학교 반장 선거는 이런 플라톤의 경고가 생생히 드러나는 ‘축소된 국가’의 현장이다.
4. ‘정의’란 무엇인가 - 이상과 현실의 타협 속에서
'국가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정의(δικαιοσύνη)’다. 플라톤에게 정의란 각자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상태다. 다시 말해, 이성이 지배하고 기개는 그것을 보조하며, 욕망은 이들 아래에서 절제되는 조화의 상태가 곧 정의로운 영혼이며, 그런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정의로운 국가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반장이라는 지도자 역시 공동체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한 중심축이어야 하며, 그 구성원 역시 각자 자기 책임과 판단을 다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고등학교 반장 선거는 종종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장으로 전락하며, 대부분의 학생은 ‘재미’, ‘연설력’, ‘인간관계’를 통해 반장을 뽑고, 이후에는 아무런 책임감도 갖지 않는다. 플라톤은 이러한 상태를 ‘위선적 정의’, 즉 이름만 정의롭고 실제로는 방임된 구조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는 진정한 정의는 단순히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과 영혼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고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반장으로 출마한 자는 진정으로 자신이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고, 투표하는 학생들은 잠깐의 유쾌함보다 긴 호흡의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 플라톤은 ‘철인은 원하지 않아도 다스려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적어도 지도자를 선택하는 자의 책임은 감당해야 한다. 비록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일지라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반장 선거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첫 번째 정치 훈련장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국가론'이 던진 질문에 작게나마 답할 수 있게 된다. “너는 어떤 지도자를 선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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