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167

'홍루몽'의 인물들이 지금 웹소설에 등장한다면 1. '홍루몽' 캐릭터의 현대적 재해석: 웹소설의 새로운 주인공들 '홍루몽'은 청나라 후기 조설근이 남긴, 동아시아 문학사에 있어 가장 입체적이고 방대한 인물 군상을 가진 고전 소설이다. 이 작품은 수십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의 사랑, 욕망, 질투, 몰락, 죽음을 다루면서도, 단 한 명의 인물도 단순하거나 일면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이 점은 오늘날 웹소설이 요구하는 복합적 캐릭터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현대 웹소설의 주인공들은 과거처럼 단순히 정의롭거나 악하지 않다. 오히려 모순된 감정, 성장과 실패,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독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홍루몽'의 인물들은 이러한 현대적 서사 감수성과도 매우 잘 어울린다. 가보옥은 전형적인 '비주류 감성형 남주'로 현대에 등장할 수 있다. 사회적 .. 2025. 4. 26.
파스칼의 '팡세'와 셀프 브랜딩 시대의 불안 1. '생각하는 갈대'와 셀프 브랜딩의 아이러니: 존재와 이미지의 간극 블레즈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비유했다. 이는 인간의 육체적 나약함과 정신적 위대함을 동시에 담아낸 상징적 표현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연약하지만, 인간은 사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주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그는 보았다. 이 철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겸허함과 자각을 요구한다. 그러나 셀프 브랜딩이 일상이 된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라 ‘보여지는 이미지’로 평가받는다. 우리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보일지, 어떻게 포장할지를 먼저 고민한다. SNS상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은 "내 피드는 얼마나 매력적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된다. ‘좋.. 2025. 4. 26.
'장자'의 무위자연, 디지털 디톡스에 어떻게 적용할까 1. 무위자연의 철학 - 장자의 핵심 사유와 현대 사회 '장자/에서 중심 사상으로 손꼽히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인간이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려 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위’는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 상태가 아니라, 인위적인 개입 없이 사물과 존재가 본래의 리듬에 따라 스스로 작동하도록 두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장자는 인간이 만든 제도, 명예, 성공, 도덕, 규범, 경쟁 같은 외적 가치가 인간 본연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보았다. 그는 “제 나무는 아무도 쓰지 않기에 오래 산다”고 말하며, 쓸모없음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적 자유를 확보하는 조건임을 강조했다. 무위자연은 인간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친 욕망과 조작, 목적의.. 2025. 4. 26.
'고려가요'와 요즘 발라드 가사의 평행 이론 1. 고려가요의 정서 구조 - 이별과 기다림의 서사 고려가요는 고려 시대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전해지며 불렸던 서정적 노래로, '청산별곡', '가시리', '정과정곡' 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 우리 고유의 감성 정서를 집약적으로 담아낸 문학 장르다. 이들 노래는 당시 민중의 삶과 정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오랫동안 구전되어 왔고, 후대에 이르러 한자 차용 표기 방식으로 문자화되었다. 고려가요의 정서적 중심에는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체념, 떠남과 그리움이라는 정념의 파동이 있다. 이 감정 구조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집단적 공감과 보편성을 동반해 당시 사회 전반에 깊이 파고들었다. 예컨대 '가시리'의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를 버리고 가시리잇고…”는 단순한 이별의 노래가 아니다. 이.. 2025. 4. 25.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알고리즘 추천과 어떤 관계인가? 1. 동굴 속 그림자 -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세계의 한계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동굴의 비유는 고대 철학을 대표하는 인식론적 상징이다. 그는 동굴에 사슬로 묶여 빛을 등진 채 살아가는 인간들을 묘사하며, 이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이라 믿는 상황을 통해 인간 인식의 한계를 설명한다.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는 실재가 아니라 외부에서 투사된 이미지이며, 이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세계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이 고전적 비유는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포털 뉴스 등 다양한 플랫폼 속에서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 알고리즘은 우리가 .. 2025. 4. 2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부모 탓을 멈췄다 1. 부모와 죄의식 -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질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단지 형제간의 갈등이나 아버지의 살해라는 사건을 넘어, 인간 존재의 심연, 책임, 자유, 사랑, 죄책감을 총체적으로 묻는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테마 중 하나는 바로 ‘부모’에 대한 태도다. 소설 속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무책임하고 탐욕스럽고 천박한 인물이다. 그는 자식들을 방치하고, 타락한 유흥 속에서 삶을 소비하며, 부성의 책임을 거의 방기한 인물이다.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세 형제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거부하거나 용서하려 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삶 속 부모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도 한때는 내 삶의 실패와 고통의 원인을 부모의 탓.. 2025.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