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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와 K-드라마 - 사랑은 죄일까? 1. 고전 속 금기의 서사 - '안나 카레니나'와 도덕의 기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문학사에서 가장 복합적인 사랑의 서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지 한 여성이 간통을 저지른 이야기로 축소되지 않는다. 안나는 단순히 욕망에 휘둘리는 인물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파괴하며, 또 동시에 인간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증명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그녀는 명망 있는 남편과 귀여운 아들을 두고, 장교 브론스키와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이 사랑은 그녀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그러나 중요한 건, 톨스토이는 그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안나의 선택과 그 결과에 담긴 감정의 밀도를 세심히 추적하면서, 독자로.. 2025. 4. 12.
'죄와 벌'과 오늘의 디지털 범죄자 심리 1.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제 제기 - 라스콜니코프의 내면과 초인 이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단지 한 살인자의 심리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윤리적 경계, 도덕의 근원, 그리고 죄책감이라는 심리적 고통의 본질을 통렬하게 해부하는 철학적 문학이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가난한 학생이자, 당시 러시아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깊은 환멸을 느낀 인물로, 기존 질서를 뛰어넘는 ‘위대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초인적 욕망을 품는다. 그는 나폴레옹 같은 위인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켰음에도 영웅으로 칭송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자신 또한 그와 같은 범주에 속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그는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쓸모없는 인간’을 제거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2025. 4. 12.
맹자의 성선설, 정말 요즘 인간에게도 적용될까 1. 성선설의 핵심 - 인간은 본디 선한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동아시아 윤리 사상의 기초를 형성한 위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선함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일시적으로 가려질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맹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고, 부끄러움을 알고, 남을 배려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하면서 이를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는 네 가지 선한 본성으로 구체화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도덕성과 정의감, 공감 능력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본성이.. 2025. 4. 11.
'일리아스' 속 영웅신화와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신화 속 영웅의 조건 - '일리아스'와 아킬레우스의 선택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단순한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으며,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실존적 서사시다. 이 작품의 중심인물인 아킬레우스는 전사로서의 완벽한 육체적 능력과 군사적 카리스마를 갖췄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고뇌와 감정의 깊이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전쟁이라는 비정한 공간 속에서 ‘명예로운 죽음’과 ‘평범하지만 긴 삶’ 사이에서 고민한다. 결국 그는 평온한 삶 대신 전장에서 이름을 남기겠다는 선택을 하고, 이는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대의 정의를 상징한다. 영웅은 단지 싸우는 자가 아니라, 선택과 책임을 지는 자라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단지 신화.. 2025. 4. 11.
'자기 앞의 생'을 읽고 ‘가족’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다 1. 관계의 시작 - 피가 아닌 선택으로 맺어진 가족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묻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모모는 부모 없이 자란 고아이며, 그의 법적 보호자인 로자 아줌마는 과거 창녀였던 유대인 노파다. 이 두 인물은 혈연도, 법적 가족도, 같은 민족도 아니다. 하지만 독자는 이들이 나누는 관계 안에서 전통적 가족보다도 더 깊고 단단한 유대를 목격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가족이 된 이유가 '피'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이다. 서로를 돌보려는 마음, 함께 살아가려는 의지, 그리고 삶의 구체적인 순간을 나누는 일상이 이들을 가족으로 만들어간다. 로자는 모모에게 "엄마"가 되려 하지.. 2025. 4. 10.
'오이디푸스 왕'과 DNA 검사 시대의 운명 1. 신탁과 유전자 - 고대의 예언과 현대의 유전자 정보는 무엇이 닮았는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가, 혹은 우리가 그것을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떠나지만, 결국 그 예언은 정교하게 실현되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운명을 피하고자 한 행동들이, 오히려 예언을 성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오늘날 DNA 검사와 유전 정보 해석의 시대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현대의 유전자 검사는 예언자보다 더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내가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 내 체질적 성향, 심지어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의 위험.. 2025.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