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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요'와 요즘 발라드 가사의 평행 이론 1. 고려가요의 정서 구조 - 이별과 기다림의 서사 고려가요는 고려 시대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전해지며 불렸던 서정적 노래로, '청산별곡', '가시리', '정과정곡' 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 우리 고유의 감성 정서를 집약적으로 담아낸 문학 장르다. 이들 노래는 당시 민중의 삶과 정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며 오랫동안 구전되어 왔고, 후대에 이르러 한자 차용 표기 방식으로 문자화되었다. 고려가요의 정서적 중심에는 사랑과 이별, 기다림과 체념, 떠남과 그리움이라는 정념의 파동이 있다. 이 감정 구조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집단적 공감과 보편성을 동반해 당시 사회 전반에 깊이 파고들었다. 예컨대 '가시리'의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를 버리고 가시리잇고…”는 단순한 이별의 노래가 아니다. 이.. 2025. 4. 25.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알고리즘 추천과 어떤 관계인가? 1. 동굴 속 그림자 -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세계의 한계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동굴의 비유는 고대 철학을 대표하는 인식론적 상징이다. 그는 동굴에 사슬로 묶여 빛을 등진 채 살아가는 인간들을 묘사하며, 이들이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이라 믿는 상황을 통해 인간 인식의 한계를 설명한다.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는 실재가 아니라 외부에서 투사된 이미지이며, 이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세계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이 고전적 비유는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포털 뉴스 등 다양한 플랫폼 속에서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 알고리즘은 우리가 .. 2025. 4. 2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부모 탓을 멈췄다 1. 부모와 죄의식 -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질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단지 형제간의 갈등이나 아버지의 살해라는 사건을 넘어, 인간 존재의 심연, 책임, 자유, 사랑, 죄책감을 총체적으로 묻는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테마 중 하나는 바로 ‘부모’에 대한 태도다. 소설 속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무책임하고 탐욕스럽고 천박한 인물이다. 그는 자식들을 방치하고, 타락한 유흥 속에서 삶을 소비하며, 부성의 책임을 거의 방기한 인물이다.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세 형제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거부하거나 용서하려 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삶 속 부모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도 한때는 내 삶의 실패와 고통의 원인을 부모의 탓.. 2025. 4. 24.
소크라테스와 메타버스에서 대화한다면 1. 철학자의 아바타 - 소크라테스, 메타버스에 로그인하다 만약 고대 아테네의 골목에서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지던 소크라테스가, 오늘날의 메타버스 공간에 로그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가 선택한 아바타는 튜닉을 입고 수염이 가득한 고전적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더 흥미로운 상상은 그가 아예 아무런 외형도 선택하지 않고, ‘질문만 존재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메타버스는 외형과 정체성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간이므로,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물리적 육체 없이 등장해 오직 언어와 질문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아바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가상 공간을 배회하며 메타버스 속 사람들에게 “그대는 왜 이 공간에 있는가?”, “이 공간의 ‘현실성’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지금 꾸미고 있는 이 외형은 당신의 .. 2025. 4. 24.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해석한 직장 내 권력관계 1. 노동과 권력의 출발점 - 자본주의적 직장 구조의 유물론적 분석 변증법적 유물론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제시한 역사 및 사회 분석의 핵심 틀로, 사회는 물질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며, 계급 간 모순이 역사의 원동력이라는 이론이다. 이 관점에서 직장은 단순한 노동 공간이 아닌, 생산수단의 소유자(자본가)와 노동력 제공자(노동자) 간의 모순과 긴장이 응축된 장소다. 직장의 조직도, 인사제도, 평가 시스템 등은 모두 이 권력구조를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하며, 개인의 성과보다 구조적 위치가 권력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실무자와 관리자의 관계는 단순한 업무 지시와 수행의 관계가 아니라, 생산수단(예산, 시간, 의사 결정권)의 통제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2025. 4. 23.
루소의 '사회계약론'으로 본 댓글 창 논쟁 1. 사회계약의 시작과 디지털 광장 - 댓글 창은 새로운 공론장인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자유, 그리고 사회적 억압에 대한 철학적 문제 제기였다. 루소는 자연 상태에서 개인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는 타인의 침해로부터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계약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사회계약'이라 부르며, 시민들이 각자의 자연적 권리를 공동체에 양도함으로써, 모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참여하는 정치 공동체의 탄생을 설명한다. 이러한 사회계약적 사고는 디지털 시대의 댓글 창(comment section)이라는 공론장 개념과 흥미롭게 맞물린다.. 2025.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