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르케고르의 불안, N포 세대의 존재를 잠식하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느끼는 불안을 존재의 근원적인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막연한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선택의 현기증'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N포 세대'는 이러한 키르케고르의 불안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현대인의 집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취업 등 사회가 제시하는 보편적인 삶의 기준 앞에서, 이들은 선택의 자유를 가진 동시에, 그 어떤 선택도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절망적인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인간은 어떤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즉,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죠. 그러나 'N포 세대'에게는 이러한 '선택'의 자유가 오히려 무거운 짐으로 다가옵니다. 경제적, 사회적 제약 속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제한적이고, 심지어 '포기'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버린 현실입니다. 키르케고르라면 'N포 세대'를 보며 "오호라, 저들은 진정으로 자유를 경험하고 있구나! 그러나 그 자유가 가져다주는 무한한 가능성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여, '포기'라는 이름의 불안 속으로 도피하는구나!"라고 탄식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불안은 단순히 물질적 빈곤에서 오는 불안을 넘어섭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자신만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존재론적 불안이 이들을 짓누릅니다. N개에 달하는 포기 목록은 결국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키르케고르적 불안의 최전선에 서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해학적이면서도 비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N포 세대'의 불안은 경제적 현실에 기반을 둔 사회학적 현상을 넘어, 키르케고르가 천착했던 인간 실존의 근원적인 고뇌와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2. 선택인가 포기인가: N포 세대의 역설적 자유와 절망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존재이며, 이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도약'이며, 이 도약을 거부하는 것이 바로 '절망'이라고 보았습니다. 'N포 세대'의 삶에서 우리는 키르케고르의 '선택'과 '절망'이라는 개념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역설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연애를 포기한다', '결혼을 포기한다'는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체적인 '긍정적 선택'이라기보다는, 주어진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내리는 '부정적 선택'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포기'는 키르케고르가 말한 '자기 자신을 선택하지 않는 절망' 또는 '자기 자신이기를 거부하는 절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인 삶'의 경로를 따르지 못하는 자신을 거부하거나, 혹은 그러한 경로를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 무력하게 순응하는 절망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키르케고르라면 'N포 세대'의 '포기'를 보며 "어리석은 자들이여, 너희는 포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자유를 유예하는구나! 그러나 자유는 결코 유예될 수 없으니, 너희의 포기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거대한 절망의 발현일 뿐이로다!"라고 일갈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N포 세대'의 '포기'가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라, 구조적인 현실의 압박 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으로 포장된다는 점입니다. 결혼하면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지고, 아이를 낳으면 돌봄 문제에 직면하며, 취업을 위해 끝없는 경쟁에 내몰리는 현실 속에서, '포기'는 오히려 '현명한 판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키르케고르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자유'를 회피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절망의 한 형태입니다. '포기'라는 이름의 '선택'은 'N포 세대'에게 역설적인 자유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심연'으로 이들을 밀어 넣는 해학적이면서도 비극적인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단독자의 고독과 군중 속의 익명성: N포 세대의 이중적 소외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오직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단독자'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군중 속에 휩쓸려 익명성에 숨는 것은 자기 자신을 책임지지 않는 '비본래 실존'이며,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군중에서 벗어나 '단독자'로서 고독하게 신과 대면해야 한다고 보았죠. 'N포 세대'는 의도치 않게 '단독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이것이 키르케고르가 말한 '본래적 단독자'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습니다.
'N포 세대'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단독자'가 됩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여가를 즐기는 '혼족' 문화는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경제적 현실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 형성된 불가피한 결과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고독'은 키르케고르가 추구했던 '자기 성찰을 위한 고독'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소외되고 단절된 '외로움'에 가깝습니다. 키르케고르라면 'N포 세대'의 고독을 보며 "저들은 군중에서 벗어났으나, 진정한 의미의 '단독자'로 서지 못하고, 그저 고독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구나! 그들은 여전히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받고 있도다!"라고 안타까워했을 것입니다.
동시에 'N포 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익명에 의한 군중' 속에 자신을 숨기기도 합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연대하고 공감하며 위로를 얻지만, 이러한 익명에 의한 관계는 때로는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고 '절망'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키르케고르가 경계했던 '군중'은 바로 이러한 '개인의 책임 회피'와 '주체성 상실'을 유발하는 존재였습니다. 결국, 'N포 세대'는 현실에서는 '고독한 단독자'로 살아가면서도, 온라인에서는 '익명에 의한 군중'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리는 이중적인 소외를 겪으며,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적 통찰을 해학적이면서도 아프게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절망을 넘어 주체적 실존으로: N포 세대의 키르케고르적 도약
결론적으로, 쇠렌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는 'N포 세대'가 겪는 '불안', '선택의 역설', 그리고 '고독'이라는 실존적 고뇌를 이해하는 강력한 철학적 틀을 제공합니다.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포기'라는 절망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키르케고르는 바로 이 '절망' 속에서 진정한 '실존'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절망은 곧 자기 자신을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N포 세대'에게 키르케고르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외부의 조건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도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적인 삶의 경로'를 따를 수 없다면, 그들만의 새로운 경로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키르케고르가 말한 '윤리적 실존'의 단계로 나아가, 보편적인 규범에 대한 책임감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설령 그것이 사회적 기준과는 다른 '혼자만의 삶'이나 '비주류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실존'이라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N포 세대'는 키르케고르의 철학을 통해 '포기'의 절망 속에서도 '자기 창조'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아 '진정한 단독자'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질 때, 그들은 비로소 '불안'을 넘어선 '자유'와 '성숙한 실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N포 세대'에게 해학적이면서도 심오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포기'는 진정 절망인가, 아니면 새로운 자신을 선택하기 위한 실존적 도약의 전 단계인가? 키르케고르는 우리가 바로 그 도약의 순간에 서 있음을 일깨워주며,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선택하는 용기야말로 가장 위대한 실존의 증거라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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