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 그리스의 쾌락, 오늘날 '치맥'으로 부활하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이 행복의 최고선'이라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한 쾌락은 무절제한 향락이나 육체적 방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평온(아타락시아)과 육체의 고통 없음(아포니아)을 통해 얻는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을 의미했죠. 그는 소박한 식사를 즐기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사색하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랬던 그가 만약 21세기 대한민국에 환생한다면, 과연 어떤 쾌락을 추구했을까요? 아마도 에피쿠로스는 오늘 밤 '치맥(치킨과 맥주)'을 외쳤을지도 모릅니다. 치맥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고단한 하루를 마친 현대인이 친구나 가족과 함께 나누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자, 스트레스 해소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피쿠로스의 정원 학파에서 강조했던 '친구들과의 소통'은 오늘날 '단체 카톡방'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한 '함께 치맥 인증'으로 변모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최신 배달 앱을 능숙하게 다루며 "닭 다리는 평등하다! 모두에게 고르게 분배되어야 진정한 쾌락이다!"라고 외쳤을지 모릅니다. 후라이드와 양념치킨 사이에서 고뇌하며 "이것이 바로 선택의 딜레마이자,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한 현명한 판단의 시작이다!"라고 했을 법도 합니다.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쾌락이라고 했던 그의 철학은, 오늘날 '월요병'과 '직장 스트레스'라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금요일 밤 치맥'이라는 의식으로 완벽하게 재해석됩니다. 에피쿠로스가 꿈꿨던 소박한 쾌락은 더 이상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닙니다. 퇴근 후 집에서 편안한 옷차림으로 넷플릭스를 보며 즐기는 치맥 한 잔, 그것이야말로 21세기 에피쿠로스가 추구했을 '가장 최소한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자, '육체의 고통(허기) 없음과 마음의 평온(만족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현대판 아타락시아이자 아포니아일 것입니다. 이는 고대 철학이 현대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해학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쾌한 상상이자, 시대를 초월한 쾌락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2. 배달 앱과 OTT가 구현하는 '에피쿠로스 정원'
고대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사색하고 소박하게 식사를 나누던 '정원'에서 탄생했습니다. 이 정원은 외부의 번잡함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지혜와 우정을 통해 평온을 얻는 공간이었죠. 그런데 21세기 현대인이 치맥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방식은 놀랍게도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디지털 방식으로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배달 앱'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결합을 통해서 말이죠. 현대인은 굳이 정원에 모이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로 원하는 치킨을 주문하고,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통해 보고 싶은 콘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이는 에피쿠로스가 강조했던 '외부의 방해로부터 자유로운 평온함'을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배달 앱은 '음식 준비의 고통'을 해소하고, OTT는 '지루함과 무료함의 고통'을 제거합니다.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피로를 한 번에 날려버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셈이죠.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친구와의 우정'을 꼽았는데, 현대인에게는 온라인을 통한 '함께 즐기는 경험'으로 확장됩니다. 같은 드라마를 보며 실시간 채팅을 하거나, 비대면으로 치맥을 즐기며 화상 통화로 소통하는 방식은 고대 정원의 '소통의 쾌락'을 디지털 세상에서 구현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에피쿠로스라면 과도한 선택지 앞에서 혼란스러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냐, 순살이냐 뼈냐, 지점은 어디로 할 것이냐... 이 모든 선택의 고통은 쾌락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닌가?"라며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최적의 쾌락'을 찾아내고, 배달 앱의 '별점'과 '리뷰'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여 '실패 없는 쾌락'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에피쿠로스적 쾌락을 더욱 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개인의 취향에 맞춰 극대화할 수 있음을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현대인의 '방콕 치맥 라이프'는 고대 에피쿠로스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정원'의 개념을 확장하며,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쾌락 지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3. 절제된 쾌락 vs. '과소비'의 유혹: 에피쿠로스의 고뇌
에피쿠로스는 무분별한 쾌락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모든 쾌락이 선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단기적인 쾌락이 장기적인 고통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소박하고 절제된 삶 속에서 얻는 지속 가능한 쾌락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보았죠. 그런데 21세기의 치맥은 종종 '과소비'와 '과식'의 유혹에 직면합니다. '1인 1닭'을 넘어 '1인 2닭'을 외치거나, 야식의 유혹에 굴복하여 다음 날 '소화 불량'이라는 고통을 경험하는 것은 에피쿠로스가 경계했던 '과도한 쾌락'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에피쿠로스라면 아마도 "치맥은 주 1회로 제한해야 육체의 고통이 없고, 마음의 평온이 오래갈 것이다!"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또한 "오늘 밤 치킨을 너무 많이 먹으면 내일 아침 위장의 고통이 따를 것이니, 적절한 양으로 쾌락을 누리되, 과도한 식탐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라고 충고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밤 10시 이후 치킨 금지'나 '맥주는 500ml 한 캔으로 제한'과 같은 자신만의 '치맥 윤리 강령'을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해학적인 충돌이 발생합니다. '자유로운 쾌락'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본능과 '절제된 쾌락'을 강조하는 에피쿠로스 철학 사이의 간극이죠. 현대인들은 넷플릭스 다음 편을 보기 위해 밤샘을 하거나, 할인 쿠폰에 눈이 멀어 필요 이상의 치킨을 주문하는 등, 순간의 쾌락을 위해 장기적인 고통(수면 부족, 소화 불량, 비만, 금전적 지출)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이는 에피쿠로스가 추구했던 '지혜로운 쾌락'이 현대 사회의 '즉각적이고 강렬한 쾌락' 앞에서 얼마나 큰 도전에 직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와 '아포니아'를 위해 '욕망의 제한'을 강조했지만,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자극하고 충동적인 소비를 부추깁니다. 따라서 21세기 에피쿠로스는 치맥 앞에서 '절제'와 '만족'이라는 철학적 고뇌를 다시금 시작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의 쾌락주의가 오늘날 '치팅데이'와 '제로 칼로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통해 유쾌하게 재조명되는 대목입니다.
4. 치맥이 던지는 질문: 21세기 에피쿠로스적 행복의 조건
결론적으로,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 오늘 밤 치맥을 외치다"라는 상상은 고대 에피쿠로스 철학의 본질인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서의 쾌락'을 21세기 현대인의 삶에 해학적으로 접목한 흥미로운 시도입니다. 치맥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아타락시아(마음의 평온)'와 '아포니아(육체의 고통 없음)'를 추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됩니다. 에피쿠로스는 외적인 부나 명예, 권력보다는 내적인 만족과 평온함, 그리고 진정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오늘날 치맥은 그러한 소박하고 확실한 행복을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치맥이 진정한 에피쿠로스적 쾌락이 되려면, '절제'와 '성찰'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과도한 섭취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나, 지나친 소비로 인한 재정적 부담은 에피쿠로스가 경계했던 쾌락의 함정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치맥이라는 소소한 쾌락 속에서도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쾌락이 지속 가능한 행복을 가져다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에피쿠로스의 치맥 상상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고대 철학의 지혜가 현대인의 삶에 어떤 유의미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가?'. 치맥은 고대 철학자와 현대인이 시대를 초월하여 공유할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의 상징이며, 이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지혜를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쩌면 에피쿠로스는 오늘날 '치맥'이라는 단어를 통해, 21세기에도 여전히 변치 않는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의 행복을 누리는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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