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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세종대왕, GPT-4로 훈민정음 재창제하다?

by lee-niceguy 2025. 5. 28.

1. 시간 초월 상상: 세종과 GPT-4의 기묘한 어전회의

 
시간을 초월한 상상이 허락된다면, 21세기 최첨단 인공지능인 GPT-4가 15세기 조선의 위대한 군주 세종대왕의 어전회의에 참석하여 훈민정음 창제 작업에 일조하는 기묘한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SF적 망상을 넘어, 정보화 시대의 언어와 지식의 본질,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류 지성사에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해학적이면서도 심오하게 탐구하는 질문을 던지죠.
 
세종대왕은 백성을 위해 언어를 만들었지만, 그 과정은 당대 지식인들에게도 난해한 언어학적, 음운학적 도전이었습니다. 상상 속 어전회의는 고요한 밤, 집현전 학자들의 고뇌와 토론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푸른 빛과 함께 등장한 GPT-4의 디지털 아바타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고전의 상징인 갓을 쓴 세종과, 미래의 상징인 광채를 내는 홀로그램 아바타 GPT-4의 대면은 그 자체로 시공을 초월한 코미디이자 동시에 진지한 철학적 대화의 서막을 알립니다.
 
만약 그에게 GPT-4와 같은 언어 모델이 주어졌다면, 훈민정음 창제는 어떤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을까요? 과연 GPT-4는 백성의 소리를 담는 문자를 만드는데 '어질 인(仁)'의 마음을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세종은 GPT-4에게 ‘백성들의 언어생활 패턴 분석’이나 ‘발음의 용이성 검증’, 또는 ‘전국 각지의 방언 데이터 수집 및 공통 음소 추출’ 같은 실무를 맡기고, 자신은 더욱 본질적인 '어진 마음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글'이라는 철학적 고뇌에 집중했을지도 모릅니다. GPT-4는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하여 수십만 개의 문자 후보군을 순식간에 제시하고, 각 후보군의 장단점을 나열하며 “이 문자는 백성들의 학습에 30%의 효율 증진을 가져올 것이옵니다”라고 보고했을 것입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조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고유의 창의적 영역을 더욱 심화시키는 도구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역설하는 흥미로운 가설이 됩니다. 우리는 이 상상을 통해 인공지능이 도달할 수 있는 지식의 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의 중요성을 동시에 엿볼 수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혜안이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을 어떻게 재단하고 활용할지 상상하는 것은 곧 미래 시대에 인공지능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세종대왕, GPT-4로 훈민정음 재창제하다?

 

2. GPT-4, 훈민정음 창제에 데이터 과학을 더하다

 
GPT-4가 훈민정음 창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면, 가장 먼저 빛을 발했을 부분은 데이터 분석과 패턴 인식 능력일 것입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방대한 한자 자료와 당시의 음운 체계를 분석하며 고뇌했을 때, GPT-4는 순식간에 수많은 어휘와 발음 데이터를 학습하고, 각 소리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어떤 조음기관을 사용하는지 등을 정밀하게 분석해 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ㄱ’ 소리가 목구멍 안쪽에서 나는 소리임을 시각화된 데이터로 제시하고, ‘ㄴ’ 소리가 혀가 윗잇몸에 닿아 나는 소리임을 정확한 발음 기관의 움직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식이죠. 또한, 당시 백성들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던 어휘들을 음소 단위로 분해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조합 가능한 자음과 모음의 개수를 제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소리 분석을 넘어, 특정 음소 조합이 백성들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나 발음상의 난이도까지 수치화하여 보고서를 올렸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각 글자가 발음될 때의 음의 높낮이, 길이, 강세까지 고려하여 시각적으로 가장 직관적이고 학습하기 쉬운 형태를 제안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에서 문법적 규칙과 의미론적 패턴을 파악하여 새로운 문장을 생성하는 방식처럼, GPT-4는 조선 팔도의 모든 소리를 분석하여 '음성 패턴 맵'을 그려내고, 이를 기반으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구별 가능한 최소 단위의 소리를 추출했을 것입니다.
 
물론 GPT-4는 '어진 마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만,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이라는 세종의 목표를 '최소한의 학습 곡선으로 최대한의 의사소통 효율을 달성하는 문자 체계'라는 데이터 기반의 목표로 재해석하여 실질적인 대안들을 제시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하, 'ㅏ' 발음은 입을 가장 크게 벌려 내는 소리이므로, 글자의 형태 또한 가장 개방적인 형태로 설계하는 것이 직관적 이해에 유리하며, 이는 학습 기간을 10% 단축시킬 것입니다”와 같은 보고를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어리석은 백성도 쉽게 익혀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글'이라는 훈민정음의 본질적 가치를 '사용자 친화성(User-Friendliness)'이라는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당시의 시대적 제약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보조를 넘어, 인공지능이 인간의 목표를 데이터 기반으로 최적화하는 방식을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3. 인간 중심 철학과 AI 효율성의 해학적 충돌

 
그러나 GPT-4의 참여가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고전과 현대의 해학적 충돌은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세종대왕은 GPT-4가 내놓은 '음소 조합 최적화 보고서'나 '문자 학습 효율성 그래프'를 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아마도 "과연 이 글자가 우리 백성들의 삶의 애환과 흥취를 담아낼 수 있는가? 농부가 밭을 갈며 내는 소리, 어머니가 아이를 어르며 부르는 자장가, 시장에서 상인들이 주고받는 활기찬 대화, 그 모든 삶의 질감과 온기를 이 차가운 데이터 분석으로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을 수 있습니다.
 
GPT-4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해답을 제시하겠지만, 인간의 정서와 문화적 맥락, 그리고 특정 시대의 염원이 담긴 '얼'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가갸거겨'와 같은 직관적인 배열 방식이나, 점 하나, 선 하나에 우주의 원리(천·지·인 사상)를 담으려 했던 세종의 철학적 깊이를 GPT-4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GPT-4는 'ㅏ'가 '하늘', 'ㅡ'가 '땅', 'ㅣ'가 '사람'을 본떴다는 설명을 들으면 "그것은 상징적 의미 부여이며, 문자 학습 효율성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추상적인 개념은 학습 초기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라고 데이터에 기반한 답변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세종은 "문자는 단순히 소리를 표기하는 도구가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읽고 세상을 이해하는 창이며, 그 안에 철학적 깊이와 미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라며 GPT-4의 효율성 지상주의에 일침을 가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철학과 인공지능의 데이터 중심 사고방식 간의 간극은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며, 아마도 세종은 GPT-4의 기계적 제안을 바탕으로 하되, 결국은 인간 본연의 지혜와 통찰력을 통해 최종적인 훈민정음의 형태를 확정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세종의 신념은, 오늘날 우리가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시합니다. 아무리 최첨단 기술이라도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와 윤리적 판단을 넘어서는 결정권은 가질 수 없음을 이 해학적인 대립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4. 도구로서의 AI, 가치로서의 인간 정신

 
결론적으로, 세종대왕이 GPT-4와 함께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상상은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지식과 창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GPT-4는 분명 방대한 정보 처리 능력과 패턴 인식으로 세종대왕에게 혁신적인 통찰과 효율적인 도구를 제공했을 것입니다.
 
마치 현대의 연구자들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하여 복잡한 과학 문제를 해결하듯이, GPT-4는 음운론적 분석이나 문자 조합의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탐색하는 데 기여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 각국의 언어 모델을 학습하여 '가장 보편적으로 배우기 쉬운 문자'의 특징들을 분석하고, 이를 훈민정음 창제에 적용해 볼 것을 제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이 단순한 기호 체계를 넘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담게 된 것은 오로지 세종대왕의 깊은 애민 정신과 통찰력, 그리고 인간 언어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GPT-4는 '언어'를 '데이터'로 인식했지만, 세종은 '언어'를 '인간 삶의 총체'로 보았던 것입니다.
 
훈민정음 서문에 담긴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펼 수 없는 사람이 많음을 딱하게 여기어,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라는 구절은 GPT-4의 효율성 보고서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공감과 연민의 발로입니다.
 
이 상상 속 협업은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적 활동을 보조하고 확장시키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철학, 윤리, 그리고 창조적 영혼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즉,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가치를 담아낼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는 해학적이면서도 진지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쩌면 미래의 인공지능은 세종의 애민 정신을 학습하여, 그저 데이터에 기반한 효율성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어진 인공지능'으로 진화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는 인공지능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가 단순히 지능을 넘어 '지혜'를 향해야 함을 역설하며, 인간 고유의 가치와 존엄성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변함없이 중요한 이유를 상기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