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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페리클레스 연설문'과 요즘 결혼식 축사 스타일 비교

by lee-niceguy 2025. 5. 27.

1. 수사와 장엄의 미학: 페리클레스 연설문은 왜 결혼식에 어울릴까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초기에 전사한 아테네 병사들을 기리는 공적인 의례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례 연설 중 하나를 남겼다. 이 연설은 단지 죽은 자에 대한 추모를 넘어서, 살아 있는 자들에게 ‘아테네 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민주 공동체의 가치를 계승하라’는 철학적 명령문이었다. 수사학적으로도 뛰어났고, 정치적으로도 뚜렷한 목적을 지닌 이 연설은, 오늘날 우리가 결혼식에서 바라는 축사의 이상적 모습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혼식은 개인의 사적인 감정과 사회적 공인이 만나는 상징적 장면이다. 두 사람이 맺는 사랑의 서약은 동시에 새로운 가족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선언이기도 하다. 페리클레스는 연설문에서 아테네의 위대함을 시민 개개인 삶의 태도와 연결 지으며, “우리의 힘은 남을 지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지배하는 방식에 있다”고 했다. 이 문장은 오늘날 결혼식장에서 “서로 존중하고, 함께 성장하는 부부가 되길 바란다”는 말로 재해석될 수 있다.

결혼은 단지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책임과 삶의 품격에 대한 공적인 선언이라는 점에서, 장중한 연설의 미학이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일 수 있다.
 
이처럼 페리클레스의 언어는 단순한 수사적 장식이 아닌, 삶의 태도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것을 언어로 정돈하는 힘을 지닌다. 결혼 축사 또한 그런 언어로 구성될 수 있다면, 단지 감동적일 뿐 아니라 의미적으로도 결혼식의 깊이를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요즘 결혼식장에서 그렇게 장중한 축사를 기대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지닌 구조와 메시지는 여전히 현대적 의례에 적용 가능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페리클레스 연설문'과 요즘 결혼식 축사 스타일 비교

 

2. 현대 결혼식 축사의 양상: 유머, 위트, 간결함의 시대

 
반면, 현대 한국 결혼식의 축사는 점점 더 간결하고 가볍고 재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0~30년 전만 해도 신랑 아버지나 학교 은사, 회사 상사가 단상에 올라 정장을 단단히 여민 채 “가정을 잘 꾸리십시오.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십시오”라며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짧고 웃긴 한마디, 짜임새 있는 드립 한 줄이 더 환영받는다. “너무 길지 않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축사의 박수 포인트가 되는 시대다.
 
그 변화의 배경에는 축사의 기능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과거 축사는 신랑과 신부가 새 인생을 시작하면서 삶의 자세와 덕목을 일깨우는 ‘작은 인생 강연’ 같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현대의 축사는 그보다는 “이 부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들인지”를 유쾌하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특히 친구가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아지며, 축사는 점점 스토리텔링 콘텐츠, 혹은 가벼운 공연 형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신랑은 대학 시절부터 사람의 말을 잘 안 들었습니다. 다만 신부의 말은 정말 잘 듣는 듯합니다. 고장 난 리모컨 같던 이 친구가 드디어 리모컨과 짝을 이루게 되었네요.”

이런 식의 위트 섞인 멘트는 청중의 웃음을 유도하고, 동시에 커플의 케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유지된다. 바로, 말하는 사람이 신랑 또는 신부의 인생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기저의 태도’다. 이 진심은 표현 방식이 달라져도 여전히 축사의 핵심을 이루며, 과거 페리클레스가 공동체 구성원을 진심으로 높였던 방식과 본질적으로는 연결되어 있다.
 

3. 페리클레스의 연설 방식과 현대 축사의 거리감: 진중함은 사라졌는가

 
페리클레스 연설의 본질은 단지 장엄하고 문학적인 수사에 있지 않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 공동체의 정체성과 가치를 재구성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태도와 목표를 제시하려는 적극적인 정치적·윤리적 행위였다. 그는 “전사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그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 삶의 새로운 책임을 낳는 시작이다”라고 말하며,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아테네 시민 전체의 삶을 성찰하도록 유도했다. 그 언어는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또 다른 삶에 무게를 더하는 고도의 수사였다.
 
오늘날 결혼식 축사에는 그런 장중한 구조와 윤리적 촉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서, 현대 사회가 갖고 있는 의례에 대한 인식의 변화, 나아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지표다. 과거에는 결혼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계승하는 핵심 제도였기 때문에, 거기에는 공동체적 언어가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축사는 ‘좋은 가장’, ‘성실한 아내’, ‘충실한 부모’가 되라는 일종의 인생 시나리오였고, 그만큼 규범적 기대와 도덕적 문장이 동반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결혼은 철저히 개인화된 선택이다. 사랑은 감정의 자유이며, 결혼은 라이프스타일의 확장선이다. 축사는 그 변화의 정서를 반영하듯 형식보다는 진정성, 철학보다는 감정, 선언보다는 공감을 우선시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웅변적 문장을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짧은 농담 한 줄, 사적인 추억 하나, 따뜻한 포옹 같은 것에 더 큰 감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 감동은 단순히 ‘가벼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말의 투명성’과 ‘감정의 진심’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장중함 속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다시 규정했다면, 현대 축사는 겸손하고 유쾌한 언어를 통해, 한 커플의 관계성을 모두가 함께 축복하는 감정적 공동체를 구성한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의 축사에서도 여전히 ‘삶의 태도’를 전하는 언어를 찾을 수 있다. “결혼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기꺼이 마주 보는 일이다”, “사랑은 함께 늙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서로를 다시 선택하는 것이다” 같은 말들은 짧지만 깊다. 이런 말들은 수사학적 기교 대신 경험에서 우러난 감정의 농도를 통해 신랑과 신부만 아니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울림을 남긴다.
장엄함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진심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4. 다시 생각하는 축사의 역할: 수사와 진심의 균형

 
결혼식 축사는 단순한 덕담이나 연설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매우 상징적인 순간에 사회가 보내는 공식적인 환대이자 인정의 말이다. 과거에는 이 말이 일정한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말하는 사람은 신랑·신부보다 나이가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어떤 식으로든 ‘조언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가, 동생이, 때로는 어린 조카가 축사를 맡는다. 그들의 말은 삶의 지침이기보다는 “당신은 사랑받는 사람입니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페리클레스는 전사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살아 있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를 당신들이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결혼 축사는 “너희의 사랑은 단지 너희 것만이 아니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사랑은 이제 공동체의 일부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는다.

다만 오늘날의 언어는 과거처럼 장중하거나 교훈적이지 않다. 대신 공감과 경험을 기반으로 한 담백한 진심이 말의 중심에 있다.
예컨대, “오늘 이 결혼식에서 내가 제일 기쁜 사람은 너희 부모님일 거야. 하지만 그다음으로 기쁜 사람은, 아마 나일지도 몰라. 내가 이렇게 멋진 커플의 친구라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러우니까”라는 말은 어떤 웅변보다 깊은 공명을 만든다. 이 말 속에는 우정, 자부심, 정서적 지지, 축복의 함축적 밀도가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축사는 결코 ‘말의 퇴보’가 아니라, ‘언어의 진화’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수사가 없어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수사의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거창하고 어려운 단어 대신, 쉬운 단어로 더 깊은 뜻을 전하고자 하는 시대. 말의 무게가 길이에 있지 않고 진심의 명료함과 전달력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 시대다. 이는 단지 트렌드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진정성의 작동 방식을 재정의하고 있다는 증거다.
 
축사는 여전히 의미 있는 수사다. 그것은 누군가의 새로운 인생 챕터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외부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축사의 언어가 변해도, 그 말이 갖는 윤리적 책임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책임이란, 단 한마디라도 두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힘이 되게 하겠다는 말의 자세다.

이 시대의 연설은 페리클레스처럼 웅변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우리는, 진심을 가볍게 담아 무겁게 전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