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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로빈슨 크루소'는 요즘 자급자족 유튜버인가

by lee-niceguy 2025. 4. 28.

1.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 서사: 고독 속에서 구축된 자급자족 세계

 

1719년, 대니얼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를 통해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작품은 단순한 모험 소설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고립, 생존, 자립)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난파 사고로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다. 배에 실려 있던 약간의 도구와 생필품을 간신히 건져낸 뒤, 그는 아무도 없는 섬에서 스스로 먹고, 입고, 살 집을 마련해야 했다. 그 과정은 절망이나 체념이 아닌, 끊임없는 실천과 창의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루소는 버려진 폐선에서 목재를 모아 작은 오두막을 짓고, 섬에 자생하는 식물과 야생 동물을 조사해 먹을 수 있는 자원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작은 작물 재배로 시작했지만, 점차 밀과 보리를 직접 재배하고, 염소를 길들여 가축화하며, 섬 안에 일종의 '소규모 농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는 환경에 단순히 적응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문명적 공간을 창조해 냈다. 이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서는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 자급자족의 실천이었다.

 

'로빈슨 크루소'가 지닌 진정한 힘은 바로 이 점에 있다. 극한 고립 속에서도 인간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구조를 세워나간다. 외부의 도움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더 나아가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이 이야기는 단지 18세기 독자들에게 식민지 개척정신을 상징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본능적으로 품고 있는 ‘자급자족’과 ‘자기완성’에 대한 근본적 열망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오늘날, 끊임없는 소비와 의존에 둘러싸인 현대인에게 이 이야기가 여전히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의 등장: 디지털 생존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자급자족은 과거와 전혀 다른 형태로 부활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부터 멀어진 삶을 동경하는 현대인들은 이제 '오프그리드(off-grid)' 생활이나 '자급자족 라이프'를 새로운 삶의 대안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유튜브에는 ‘자연인 라이프’, ‘오지 브이로그’, ‘자급자족 농장 프로젝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단순히 시골 생활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농작물을 키우고, 집을 짓고, 생존 기술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자급자족 유튜버들은 대개 도시의 편리한 인프라를 거부하고, 불편함과 불확실성이 가득한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흙을 직접 개어 벽돌을 만들고, 자재를 손수 가공해 오두막을 짓고, 논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형 식단을 꾸린다. 종종 전기나 상수도 없이 살아가는 경우도 있으며,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들의 콘텐츠는 화려한 편집이나 극적인 연출이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노동과 자연과의 교감을 담고 있어 오히려 큰 몰입감을 준다.

 

이러한 자급자족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것은 현대인의 심리적 피로와 무관하지 않다. 끝없는 경쟁과 소비,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깊은 고립감과 소외를 경험하고 있다. 자급자족 유튜버들은 그런 현대인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줄 뿐이다. 스스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단단하고 충만할 수 있는지를.


이 점에서 자급자족 유튜버들은 현대의 '디지털 로빈슨 크루소'다. 그들은 외딴 공간에서, 그러나 이제는 카메라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생존과 자립의 서사를 세상과 공유한다. 디지털 네트워크 위에 구축된 그들의 섬은, 고전 속 크루소의 무인도와는 다르지만,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열망(스스로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간다는 욕망)을 똑같이 담아내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요즘 자급자족 유튜버인가

 

3. '로빈슨 크루소'와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의 공통점: 자립 서사의 매력

 

'로빈슨 크루소'와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들은 겉으로 보기엔 시대도 다르고 기술도 다르지만, 그 본질에서는 매우 깊은 유사성을 공유한다. 가장 핵심적인 공통점은 ‘자립 서사(Self-reliance Narrative)’다. 즉, 외부의 도움이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삶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서사적 흐름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라는 극한 상황에서 농사를 짓고, 집을 세우고, 도구를 제작하며 점차 문명적 삶의 틀을 스스로 구축해 나갔다.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들 역시 도시 문명을 뒤로하고, 최소한의 자원만을 가지고 자연 속에서 삶을 일구어 나간다.

 

이 자립 서사의 매력은 단순한 ‘살아남기’에 있지 않다. 크루소가 단순히 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했던 것처럼,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들도 단순한 생존 이상의 목표를 지향한다. 거친 자연 속에서도 더 나은 거처를 만들고,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고, 더 효율적인 농작 방법을 연구한다. 이 과정은 인간이 가진 본능적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과정이며, 그 자체가 하나의 성장 서사가 된다.

 

또한 두 서사는 모두 '시간의 주체적 사용'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크루소는 고립된 환경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다. 오늘날 자급자족 유튜버들 역시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스스로 설계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자급자족을 단순한 불편한 삶이 아니라, ‘삶을 주체적으로 다시 쓰는 일’로 인식한다. 이런 자립 서사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강한 매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무한한 소비와 연결 속에서 오히려 무력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은 강력한 심리적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서사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것도, 그리고 현대 자급자족 콘텐츠가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도 결국 이 ‘주체적 생존’이라는 본능적 매력 때문이다.

 

4. 디지털 시대의 로빈슨 크루소: 자급자족 서사의 진화

 

그러나 '로빈슨 크루소'와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의 서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바로 ‘완전한 고립’과 ‘디지털 연결’이라는 점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로 무인도에 갇혀 있었다. 반면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들은 자연 속에 살면서도, 촬영과 편집을 통해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물리적 고립을 선택하지만, 동시에 그 고립을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과 소통한다. 즉, 현대의 자급자족 서사는 ‘고립 속의 연결’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차이를 넘어, 자립 서사의 의미 자체를 변화시킨다. 로빈슨 크루소에게 자립은 생존의 절박한 필요였지만,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들에게 자립은 선택이자, 삶의 양식이며, 동시에 퍼포먼스다. 그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소비 중심 사회에 대해 은연중에 대안을 제시한다. 단순히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불편을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자유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또한 현대 자급자족 유튜버들은 디지털 세계 안에서 경제적 자립까지 추구한다. 생존과 자립의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광고 수익이나 스폰서십을 얻고, 이를 통해 또 다른 형태의 독립성을 구축해 나간다. 이는 고전적인 생존 서사와는 전혀 다른, 현대적이고 복합적인 자립 모델이다. 물질적 자립과 정신적 자립, 그리고 디지털 경제적 자립이 결합된 복합 서사가 현대 자급자족 콘텐츠의 독특한 매력이다.

 

결국 '로빈슨 크루소'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살아 있다.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현대의 '크루소'들은 고립과 연결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자립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자급자족은 단순한 로망이나 회귀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과잉과 소외를 넘어서는 진지한 실험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실험은, 무인도 위의 한 인간의 고독한 싸움에서 시작된, 인간 존재에 대한 영원한 질문 "나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새로운 답변을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