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뢰즈의 리좀, 숏폼 콘텐츠의 비선형적 연결을 해명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그들의 철학에서 리좀(Rhizom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전통적인 위계적이고 선형적인 사고방식에 도전했습니다. 리좀은 뿌리줄기처럼 수평적이고 비선형적으로 확장하며, 어떠한 중심이나 시작점, 끝점도 없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변화하는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이는 위계적인 '나무' 구조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유동적이고 다층적인 연결망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들뢰즈의 리좀 개념은 오늘날 '숏폼 콘텐츠(Short-form Content)'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이야기의 그물망과 그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비선형적인 정보 소비 방식을 설명하는 데 놀라운 통찰을 제공합니다. 틱톡, 유튜브 쇼츠, 릴스 등 숏폼 콘텐츠는 짧고 파편적인 영상들이 끊임없이 연결되며 새로운 의미와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숏폼 콘텐츠 플랫폼에서 우리는 하나의 영상을 시청하다가도 관련 영상이나 추천 영상을 통해 전혀 다른 주제의 영상으로 쉽게 넘어갑니다. 특정 영상이 다른 영상의 BGM으로 사용되거나, 특정 밈이 다양한 영상에 변주되어 나타나는 등 콘텐츠들은 서로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연결되고 증식합니다. 이는 들뢰즈가 말한 리좀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나의 중심된 서사 없이, 파편적인 정보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되며 새로운 의미의 흐물거리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죠. 들뢰즈라면 숏폼 콘텐츠의 세계를 보며 "오호라, 저들은 '나무'의 질서에서 벗어나 '리좀'의 자유를 만끽하는구나! 저들의 연결망은 어떠한 중심도 없이 무한히 확장하며, 새로운 '의미의 생성'을 끊임없이 일으키도다!"라고 흥미롭게 관찰했을 것입니다.
결국 들뢰즈의 리좀 개념은 숏폼 콘텐츠가 단순히 짧은 영상의 나열을 넘어, 어떠한 위계나 중심 없이 파편적인 정보들이 수평적이고 비선형적으로 연결되며 무한한 이야기의 그물망을 형성하는 현대 미디어의 본질을 해학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조명합니다. 숏폼 콘텐츠는 고정된 서사를 해체하고, 사용자가 스스로 의미의 연결망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 소비 방식을 제시합니다.
2.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밈과 챌린지의 증식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이 끊임없이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되고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된다고 보았습니다. 탈영토화는 기존의 고정된 질서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재영토화는 새로운 연결과 배치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숏폼 콘텐츠에서 발생하는 '밈(Meme)'과 '챌린지(Challenge)'의 확산은 바로 이러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역동적인 과정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문화적 의미가 어떻게 끊임없이 재구성되는지를 드러냅니다.
특정 영상이나 이미지가 밈이 되어 다양한 맥락과 형태로 변주되는 현상은 원본 콘텐츠가 가진 고유한 '영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토'에서 재해석되는 탈영토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특정 드라마의 한 장면이 밈으로 활용되어 전혀 다른 상황에 적용될 때, 그 장면은 본래의 드라마 맥락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합니다. 또한, 댄스 챌린지나 노래 챌린지는 특정 안무나 음악이 사용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모방하고 변형되며 재영토화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형성합니다. 들뢰즈라면 밈과 챌린지를 보며 "보라, 저 콘텐츠들은 스스로 '영토'를 벗어나 끊임없이 유랑하는구나! 그러나 그 유랑 속에서 새로운 '영토'를 건설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도다! 저들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춤을 추고 있나니!"라고 감탄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밈과 챌린지의 확산은 특정 콘텐츠의 원본성이나 저작권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대신 대중의 참여와 변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합니다. 이는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참여자가 능동적으로 '의미의 생산자'가 되는 리좀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숏폼 콘텐츠에서 나타나는 밈과 챌린지의 증식은 들뢰즈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개념이 지적하는 고정된 의미와 영토에서 벗어나,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문화적 흐름을 해학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다수성(Multiplicity), 파편화된 정보 속 소통의 가능성
들뢰즈의 리좀은 '다수성(Multiplicity)'이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리좀은 하나의 전체로 환원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분열하고 재결합하며 다양한 부분들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시스템입니다. 숏폼 콘텐츠는 이러한 다수성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파편화된 정보들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짧고 단편적인 영상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정보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숏폼 콘텐츠 플랫폼에서 우리는 정치 뉴스, 코미디 영상, 요리 팁, 댄스 챌린지 등 전혀 다른 종류의 콘텐츠들을 동시에 접하게 됩니다. 각 콘텐츠는 짧고 독립적인 하나의 '점'처럼 존재하지만, 추천 알고리즘이나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무한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나만의 리좀'을 형성합니다. 이는 하나의 중심 주제 없이 다양한 정보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고, 사용자가 스스로 의미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다수성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들뢰즈라면 이러한 숏폼 콘텐츠의 정보 나열을 보며 "보라, 저 정보들은 '단일성'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다수성'의 자유를 누리는구나! 저들의 파편화된 모습 속에서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이 싹트도다!"라고 흥미롭게 관찰했을 것입니다.
또한, 숏폼 콘텐츠는 복잡한 개념이나 긴 이야기를 짧고 압축적인 형태로 전달함으로써, 바쁜 현대인들에게 효율적인 정보 소비 방식을 제공합니다. 이는 모든 정보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파편적인 정보들을 빠르게 습득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더 깊이 탐색하도록 유도합니다. 결과적으로, 숏폼 콘텐츠의 다수성은 들뢰즈의 리좀 개념이 지적하는 파편화된 정보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새로운 지식의 그물망을 형성하고, 현대 사회의 소통 방식에 새로운 가능성을 해학적이면서도 유연하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4. 생성의 미학,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의 확장
들뢰즈의 리좀은 정적인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생성(Becoming)의 미학을 담고 있습니다. 어떠한 고정된 형태나 본질 없이, 끊임없이 운동하고 진화하는 것이죠. 숏폼 콘텐츠는 이러한 생성의 미학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의 확장을 가능하게 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고정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서사를 경험합니다.
숏폼 콘텐츠는 하나의 영상으로 시작되지만, 댓글, 리믹스, 듀엣 등의 기능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와 의미를 덧붙여 나갑니다. 특정 영상에 대한 반응이 또 다른 영상을 만들고, 그 영상이 또 다른 영상을 파생시키면서 하나의 콘텐츠는 무한한 '이야기의 줄기'를 뻗어 나갑니다. 이는 저자가 의도한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아니라,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예측 불가능한 서사입니다. 들뢰즈라면 숏폼 콘텐츠의 이러한 확장을 보며 "보라, 저 이야기들은 스스로 '형태'를 고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되는구나! 저들의 '운동'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하며, '고정된 진리'라는 허상을 부수도다!"라고 감탄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성의 미학은 숏폼 콘텐츠를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대중이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듭니다. 어떠한 권위 있는 저자도 이 거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으며, 모든 참여자가 의미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숏폼 콘텐츠는 들뢰즈의 생성 개념이 지적하는 고정된 이야기 구조를 넘어, 참여자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고 '확장'되는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의 그물망을 해학적이면서도 혁신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이야기가 소비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사하며, 무한한 창의적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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