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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나서 AI 감정 분석이 무의미해진 이유

by lee-niceguy 2025. 4. 15.

감정 분석의 알고리즘 - 기계가 읽는 슬픔의 방식

 
AI 감정 분석은 텍스트, 음성, 얼굴 표정, 생체 신호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분류하려는 기술이다. SNS에 올라온 문장의 어조, 고객센터 상담 중의 억양, 유튜브 댓글의 단어 선택, 또는 음성 속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감정 인식의 대상으로 분석된다. 이 기술은 자연어 처리(NLP), 딥러닝, 정서 분류 알고리즘을 통해 감정을 ‘정량화 가능한 지표’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감정을 수치화하고 범주화함으로써, 마케팅 전략을 정교화하고, 사용자 경험을 맞춤형으로 구성하며, 심지어는 정신 건강 상태를 조기에 감지하는 등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감정은 데이터로 환원될 수 있다’는 철학적 전제를 기반으로 작동한다. 즉, 기쁨은 특정 단어와 문장 구조로, 분노는 특정한 어조와 언어적 특징으로, 슬픔은 낮은 톤과 부정적 단어 빈도로 분석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 가정에는 감정이 항상 일정한 언어적 혹은 음성적 표현을 통해 동일한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환원주의적 오류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슬프다’고 말하지 않고도 깊은 슬픔을 표현할 수 있으며, 반대로 ‘괜찮아’라는 말이 진정한 안도감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잘 지내고 있어”라는 말 한마디에도 외로움, 무기력, 자기기만이 뒤엉켜 있을 수 있다. AI는 이 표현을 긍정으로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그 속에 감춰진 아이러니, 모순, 불협화음을 본능적으로 읽어낸다.
 
문맥 이해를 위한 알고리즘적 기술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지만, 문맥 너머에 존재하는 심층적 감정 구조, 예컨대 감정이 감정과 충돌하거나, 감정이 논리를 압도하거나, 감정이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경우에 AI는 여전히 해석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이 AI 기술과의 철학적 충돌을 야기한다. 그의 작품 속 감정은 단순히 슬픔, 기쁨, 분노로 명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감정을 단일한 정서적 응답이 아닌 존재론적 고민과 윤리적 갈등이 얽힌 서사적 사건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을 읽는 순간, 인간의 감정은 라벨링 할 수 없는 복잡성을 드러내며, AI 분석 시스템의 정합성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도스토옙스키 문학 - 혼란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진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은 감정이 분류나 측정의 대상이 아니라, 혼란, 자기모순, 초월적 고통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본질적 특성임을 보여준다. 그의 인물들은 단순히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회피하고, 왜곡하고, 동시에 갈망하며 살아간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선을 위한 악이라는 이중 윤리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으면서도 죄책감에 잠식된 내면을 이성으로 가두려 한다. 그는 끊임없이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교차하며,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 감정을 믿지 못하고, 또 어떤 순간에는 감정에 전복된다.
 
AI 감정 분석은 슬픔은 하강하는 어조로, 분노는 상승하는 어조로, 불안은 불연속적인 문장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숨기는 방식’으로 더 많이 표현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화자는 스스로 모순적임을 자각하면서도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통해 감정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그는 “나는 병들었고, 악의적이며, 매력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자기혐오와 자기 고백이 뒤엉킨 복합적 정서를 생성한다. 이 감정을 어떤 라벨로 정의할 수 있을까? ‘불안’, ‘혐오’, ‘자기기만’? 이 질문에 정확히 답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감정 그 자체를 단순화시키는 폭력일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의 문장은 우리가 감정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감정은 충돌하고, 모순되고, 때로는 자기 파괴적이며, 그 속에서 인간의 실존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것은 AI가 인식하는 감정의 평면성과는 정반대의 구조다. AI는 감정을 기술적으로 해석하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감정을 문학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결국에는 독자가 그 감정의 의미를 구성해내게 만든다. 감정은 존재의 심연을 가리키는 도구이며, 그 깊이는 어떠한 알고리즘도 완전히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감정의 연극성과 비 의도성 - AI가 놓치는 인간 표현의 속성

 
감정은 반드시 진실해야만 할까? 도스토옙스키는 오히려 ‘연기된 감정’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위장하며, 과장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이때 감정은 단지 '있는 그대로의 감각'이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는 복합적인 서사적 행동이다. '백치'의 미시킨 공작은 순수한 인물로 보이지만, 그의 순수는 타인의 악의를 감싸는 역설이 되며, 끝내 그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이처럼 감정은 진정성과 허위, 의도와 무의도, 표현과 억압의 혼성 영역에 놓여 있으며, AI의 분석 시스템은 이러한 모호성과 충돌을 구조적으로 포착하지 못한다.
 
AI 감정 분석의 전제는 명확하다. 인간은 감정을 표현하고, 기계는 그것을 분석한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감정을 숨기기 위해 감정을 표현한다. '슬픔을 가리기 위한 웃음', '분노를 숨기기 위한 무표정', '공감을 유도하기 위한 연민의 과장된 표정' 등 감정은 역설적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중성, 연극성, 아이러니는 단순한 정서적 기호가 아니라, 사회적 생존 전략이자 정체성의 방어 기제다. 예컨대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에는 안도, 체념, 분노, 냉소, 자기기만 등 수많은 감정이 중첩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AI는 이 문장을 ‘중립’ 혹은 ‘긍정’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은 그런 문장 속에 숨어 있는 소리 없는 절규와 감정의 역류를 파헤친다.
 
또한 인간 감정의 핵심 중 하나는 비 의도성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왜 우는지도, 왜 화가 났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감정은 뇌의 이성적 피질이 아닌, 훨씬 더 원초적이고 복합적인 층위에서 일어난다. 인간은 감정에 대한 자각 없이 반응하고, 때로는 그 반응을 사후적으로 합리화한다. AI는 정제된 데이터와 반복적 패턴에서 의미를 추출하지만, 실제 인간 감정의 결정적 순간은 예외적이고 불규칙한 곳에서 일어난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러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찰나를 가장 탁월하게 포착한 작가다. 그의 문장은 감정을 수치화할 수 없는 '침묵과 왜곡, 불일치와 파열의 순간'에 고정해, 기계가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의 실존적 구조를 드러낸다.
 

감정의 해석이 아닌 참여 - 도스토옙스키가 가르쳐주는 독자의 역할

 
AI 감정 분석이 ‘해석의 기술’이라면,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은 ‘참여의 수행’이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그 감정의 윤곽을 함께 만들어가도록 구성된 열린 체계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불안, 이반의 냉소, 스메르쟈코프의 증오와 절망은 그 자체로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독자는 텍스트와 상호작용하며 감정을 재구성하고, 해석하며, 때로는 그 의미를 유예한다. 독자는 감정의 소비자가 아니라 감정의 공동 창조자이며, 해석자가 아니라 공존자다. 반면, AI는 정서의 구조를 외부로부터 읽어내려 하지만, 스스로 그 안에 들어가 공존하거나 변화하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감정이 고립된 내부 구조가 아니라,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되고 변형되는 관계적 사건임을 집요하게 묘사한다. 인물의 고통은 타인의 침묵과 무관심 속에서 증폭되고, 반대로 의도치 않은 연민 한 마디가 감정의 전환점을 만든다. 이는 AI가 감정을 일방향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구조와 본질적으로 충돌한다. AI는 감정의 반사적 반응을 측정할 수는 있어도, 감정이 발생하고 교차하며 공동체적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살아낼’ 수는 없다. 감정은 상황과 문맥, 관계와 시간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움직이는 사건이며, 이는 인간 존재의 핵심적 활동이기도 하다.
 
결국 도스토옙스키는 독자에게 묻는다. “그 감정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함께 살아내라.” 이것은 문학이 제안하는 윤리적 행위이며, AI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감정은 데이터가 아니며, 해석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기회이자 실존의 증거다. 우리가 그의 문장을 읽으며 고통을 느끼고, 모순 속에서 흔들리며, 한 인간의 절망에 공명하는 순간, 우리는 데이터 분석의 언어가 아닌, 삶과 감정의 언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AI가 놓치는 바로 그 지점, 즉 인간의 감정이 철학이자 윤리이고, 해석이자 체험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