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기심과 풍자의 시선 - 연암의 눈으로 본 유튜브 소비자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당대 사회의 위선을 통렬하게 풍자하며 인간 본성의 이면을 꿰뚫어 본 문인이었다. 그는 사대부의 허례허식을 조롱하고, 백성의 삶을 관찰하며,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인간의 허영과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오늘날 연암이 살아 있었다면, 가장 먼저 탐색했을 대상은 아마도 유튜브라는 영상 콘텐츠 플랫폼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튜브는 현대인의 욕망, 자기 연출, 위선, 실용성, 오락성이 모두 농축된 디지털의 ‘풍속화’이기 때문이다.
연암은 ‘관찰자’이자 ‘해학가’였다. 그는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관찰 대상의 심리를 꿰뚫는 시선과 서늘한 유머로 당시의 현실을 해부했다. 현대인의 유튜브 시청 행태는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는 행위다. ‘나는 이런 채널을 본다’는 말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선언과 다름없다. 연암의 시선으로 보면, 이는 조선 후기 선비들이 탕평책을 외치면서도 집안에서는 노비를 학대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공정과 진실을 외치며 ‘정치 콘텐츠’를 시청하다가도, 잠시 후 ‘먹방’이나 ‘썰 푼다’는 콘텐츠에 열광하는 모습은 인간의 다층적 욕망이 디지털 공간에서 어떻게 동시에 발현되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연암이라면 유튜브를 ‘현대의 풍속을 실시간으로 전시하는 전광판’이라 칭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의 시청자들을 향해, “너희는 어떤 욕망으로 무엇을 클릭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2. 콘텐츠의 실용성과 공허함 - 실학의 관점으로 본 정보 채널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은 단지 유용한 것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태도였다. 그는 북학파의 일원으로서, 청나라 문물과 기술, 상업과 과학의 실용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의 도리와 사회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작동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연암이 오늘의 유튜브를 본다면, 가장 먼저 ‘정보 콘텐츠의 실질적 가치’를 분석했을 것이다.
현대 유튜브에는 수많은 정보 채널이 존재한다. 경제, 주식, 심리학, 외국어, 요리, 인테리어, 자기 계발 등 겉보기에 유익한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연암은 그 이면을 보고 질문했을 것이다. “이 정보는 누구에게 유용한가? 그리고 실제 삶을 바꾸는가, 아니면 공허한 만족만을 남기는가?” 많은 콘텐츠가 단지 클릭 수를 위한 자극적 제목과, 반복되는 형식, 깊이 없는 설명, 실제로는 실천 불가능한 방법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연암이라면 이를 ‘종이 위의 북벌론’, 말만 무성한 이상주의로 비유했을 것이다.
실학은 곧 실효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연암은 오늘날 유튜브 정보 채널이 사용자의 행동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과도한 소비로 무력감을 심화시킨다면, 그것은 실용이 아니라 “디지털 사변(思辨)”에 불과하다고 일갈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지식을 습득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위안에 빠지는 것, 이는 조선 후기 책상머리 학문과 다를 바 없다고 그는 비판했을지 모른다.
3. 연암의 풍자 정신 - 허위 콘텐츠와 과장된 자기 연출
연암 박지원의 문체는 시종일관 풍자를 품고 있었다. 그는 '호질'에서 선비의 위선을 낱낱이 해부하며, 인간의 본성을 드러냈다. 오늘날 유튜브 세상에서 그는 ‘페르소나(persona)’라는 가면 뒤에 숨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전략적 자아를 집중적으로 분석했을 것이다. 브이로그, SNS 형 일상 콘텐츠, 자기 계발, 심리 멘토링, 심지어 고전 소개 콘텐츠조차도 실제 삶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연암은 특유의 문체로 집요하게 추적했을 것이다.
예컨대, 하루 일과를 공유한다며 촬영한 영상이 사실은 며칠에 걸쳐 연출된 이미지 조각이라는 사실, 삶을 논한다는 콘텐츠가 실상은 브랜드 협찬과 광고를 위한 포장물이라는 점을 그는 간파했을 것이다. 연암은 이와 같은 허위 이미지가 사람들의 환상을 자극하고, 그 환상이 또 다른 소비를 낳는 구조를 ‘감성의 장사’, 또는 ‘공허한 이익의 환영’이라 불렀을 것이다. 특히, 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 속에서 가짜 약을 파는 약장수에 비유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콘텐츠 자체의 진정성과 생활과의 접점이었다. 영상은 말보다 강하고, 이미지로 구성된 정보는 강력한 ‘감정적 현혹’ 효과를 가진다. 연암은 이러한 강렬한 자극이 시청자의 사고력을 약화시키고, 진짜 삶과의 괴리를 심화시킨다면, 그것은 ‘사이비 실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을 것이다. 콘텐츠는 ‘즐거움’을 넘어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기에, 그는 오늘날의 유튜브 풍경을 보며 “웃음은 넘치되, 반성은 부족하도다”라 탄식했을지 모른다.
4. 북학의 유산과 디지털 공론장 - 연암이 꿈꿨을 새로운 유튜브
연암 박지원은 단순히 비판적 지식인이 아니었다. 그는 변화를 추동하는 실행자였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세계관이 청나라라는 새로운 문명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사고와 언어, 제도가 열려야 하는지를 보여준 문화적 혁신의 기록이었다. 그런 그라면 오늘날의 유튜브를 무조건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공론장이자 탈중심화된 지식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했을 것이다.
유튜브는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누구나 사회적 담론에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미디어 공간이다. 이는 연암이 ‘북학’을 통해 지향했던 개방성과 비판적 수용, 그리고 문화 간 교류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는 유튜브 속 무수한 시도들, 소수자들의 목소리, 현장에서 직접 기록되는 시민의 카메라, 소외된 주체들의 이야기들에 감동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이 부러워했던 청의 실용 기술을 연구하듯, 그는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디지털 문명과 윤리의 가능성을 탐색했을 것이다.
연암은 ‘배우고 실천하라’는 실학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유튜브를 비판만이 아닌 대안적 실천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현실에 기반한 콘텐츠’, ‘일상의 철학을 나누는 영상 에세이’, ‘허례허식을 풍자하는 시사 풍속극’ 같은 채널을 스스로 운영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유튜브를 하나의 ‘열하일기’로 확장했을 것이다. 세상의 진실을 목격하고, 그것을 글과 영상으로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실학이자 저항이며, 혁신임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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