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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아리스토텔레스가 K-POP 뮤직비디오를 본다면

by lee-niceguy 2025. 4. 13.

1. 모방(mimesis)과 감정의 카타르시스 -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K-POP 서사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본질을 "모방(mimesis)"에서 찾았다. '시학'에서 그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모방하는 존재이며, 그 모방을 통해 배움을 얻고 감정적으로 해방된다고 주장했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의 '모방'은 현실의 삶, 인간의 고통과 희망, 윤리적 딜레마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그 목적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관객이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감정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catharsis)의 경험을 얻는 데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정서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믿었으며, 이는 곧 예술의 사회적 가치이자 철학적 의미였다.

 

오늘날 K-POP 뮤직비디오는 고도로 정제된 시청각 미디어 언어를 통해 현대인의 감정, 욕망, 좌절, 회복을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단순히 음악에 맞춘 화려한 영상이 아니라, 정서적 스토리텔링의 압축된 표현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방탄소년단(BTS)의 <Fake Love>, <Spring Day>, 태연의 <INVU>, 뉴진스의 <Ditto> 등은 ‘실연’, ‘그리움’, ‘자기상실’, ‘자아 발견’ 등의 감정선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관객이 자기감정을 투영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뮤직비디오는 개인의 내면적 상처나 성장의 단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보편적인 감정의 언어를 제공한다. 이는 관객이 감정을 표출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현대적 카타르시스의 장으로 기능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K-POP을 접했다면, 그는 이를 단순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아닌, 감정 철학의 진보된 형태로 해석했을 것이다. 감정은 그의 철학에서 비이성적 요소가 아니라, 인간 행동의 본질적 구성 요소였다. 그는 예술이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내되, 그것이 무질서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고, 윤리적 균형을 유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K-POP 뮤직비디오는 바로 이 조건을 충족한다. 감정의 과잉이 아닌 정교한 구조 속에서 감정을 유도하며, 그 감정을 사회적 맥락과 윤리적 질문으로 연결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K-POP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예술의 본래 목적과 가장 유사한 현대 장르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2. 리듬과 하모니 - 음악의 윤리적 구조로서의 K-POP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중시했다. '정치학'에서 그는 음악이 단순한 감각의 유희가 아니라, 정신의 질서를 형성하고 윤리적 성장을 이끄는 수단이라고 명시했다. 그는 사람의 감정과 성격은 리듬과 하모니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음악은 정치와 교육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관점에서 K-POP은 단지 청각적 소비를 위한 유행 음악이 아니라, 현대인의 정서적 구성과 행동 양식을 길러내는 사회적 미디어로 작동한다.

 

특히 K-POP 뮤직비디오는 리듬과 시각적 이미지, 안무와 서사를 하나로 융합하여 감각적, 정서적, 윤리적 체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복합 매체다. 이 안에서 리듬은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요소가 아니라, 감정의 진폭을 조절하고, 정체성과 연대를 체험하게 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은 억눌려 있던 자아의 분출과 복수를 리듬의 상승과 드롭을 통해 강렬하게 드러내며, 단순한 음악적 쾌감을 넘어서 자기 긍정과 감정 승화의 서사를 전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형식을 본다면, K-POP은 ‘오락’이라는 말로 축소될 수 없는 장르임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그는 특정한 리듬과 선율이 특정한 감정을 자극하고, 그 감정이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며, 나아가 시민의 윤리 의식을 결정짓는다고 믿었다. 실제로 K-POP은 청소년과 청년층의 분노, 슬픔, 정체성의 혼란 등을 해소하고, ‘연결됨’이라는 사회적 감정을 확산시키며, 일상에서 느끼는 단절과 불안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이러한 면에서 K-POP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상적 예술 조건, 즉 감정의 질서를 형성하고, 인간다움을 조율하며, 공동체의 윤리 감각을 고양시키는 예술로 충분히 자리매김할 수 있다. K-POP은 듣는 음악을 넘어서, 감정을 ‘훈련’하고 ‘이끌어내며’, 사회적 윤리를 재구성하는 현대적 정서 교육의 현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K-POP 뮤직비디오를 본다면

 

3. '좋음'의 기준과 공동체 - K-POP은 덕(arete)을 구현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행복(eudaimonia)’이며, 이는 단순한 쾌락이나 순간적인 만족이 아닌, 덕(arete)을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덕이란 특정한 행위를 잘 해내는 능력일 뿐 아니라, 인간 고유의 기능인 ‘이성적 삶’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탁월함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덕의 실천이 개인의 내면적 조화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역할 수행과 조화로운 관계맺기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K-POP이라는 문화적 실천이 개인과 공동체의 ‘덕’을 실현하는 방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단순한 긍정에 그치지 않고, 복합적이면서도 풍부한 해석으로 확장될 수 있다.

 

K-POP은 단지 음악 장르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아티스트, 소비하는 팬덤,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담론 생태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문화적 공동체다. BTS가 <Love Myself> 캠페인을 통해 심리적 자존감과 자기긍정을 주제로 한 글로벌 메시지를 전달한 사례는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시도는 단순히 사회적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인간 내면의 가치와 사회적 윤리를 연결시키려는 철학적 실천에 가깝다. 스트레이 키즈의 <MIROH>처럼 개인의 혼란과 정체성의 탐색을 표현하는 곡들도,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적 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윤리적 접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폴리스(도시국가)' 개념과도 연결된다. 그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zōon politikon)’로 정의하며, 진정한 행복은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덕을 실현할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때 K-POP은 팬과 아티스트가 서로 정서적으로 연결되며,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현대적 ‘폴리스’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팬덤 활동 또한 단순한 소비를 넘어, 기부, 봉사, 환경 캠페인 등 다양한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되며, 덕의 실천장이자 윤리적 행위의 집합체로 발전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를 본다면, K-POP은 감정의 자극을 넘어 ‘좋음의 실천’을 수행하는, 윤리적으로 고양된 예술 형태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4. 극적 구성과 연민 - 서사와 인간다움의 완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훌륭한 비극이란 관객에게 연민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감정 정화를 유도하는 예술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 과정이 단순히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서사 속에서 벌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사(plôt), 성격(ethos), 사상(dianoia), 언어(lexis), 멜로디(melody), 장면 구성(opsis)이라는 여섯 가지 구성 요소가 긴밀하게 통합될 때 비로소 예술은 인간의 내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흥미롭게도 K-POP 뮤직비디오 다수는 이 고대 비극의 구성 요소를 현대적 언어로 치환하여 매우 정교하게 구현하고 있다.

 

예컨대 TXT의 <0X1=LOVESONG>은 청춘의 절망과 사랑을 통해 구원을 갈망하는 심리를 폭발적인 사운드와 환상적인 비주얼, 고립된 캐릭터 구조를 통해 서사화한다. 에스파의 <Black Mamba> 시리즈는 가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세계관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기억의 의미를 탐색하며, 단순한 뮤직비디오를 넘어서 서사적 세계관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세븐틴의 <Don’t Wanna Cry>는 상실 이후 고독과 절망의 감정을 안무와 배경, 조명, 카메라 무빙을 통해 감각적으로 설계함으로써 관객이 ‘공감’이라는 경험을 강하게 체화할 수 있도록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이런 K-POP의 서사적 전략은 ‘비극적 몰락’을 통한 윤리적 성찰 구조와 맞닿아 있다. 그는 훌륭한 인물이 사소한 실수로 인해 몰락할 때, 그 과정을 통해 관객이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동시에 고귀함을 마주하게 된다고 보았다. K-POP의 뮤직비디오는 바로 이러한 과정을 시각적 언어와 청각적 구조, 감정적 서사를 통해 극대화한다. 그리고 이 서사는 단순한 이야기의 전달을 넘어서, 관객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감정을 정돈하며, 윤리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정서적 장치로 기능한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늘날 K-POP 뮤직비디오를 본다면, 그것은 단지 대중문화로 소비되는 오락물이 아니라, 이성과 감정, 미학과 윤리, 개인과 공동체의 경계를 통합하는 현대 예술철학의 집합체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는 K-POP을 통해 인간은 여전히 감정 속에서 진실을 찾고, 서사를 통해 자기 삶을 성찰하며, 아름다움 속에서 윤리적 방향성을 고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의 예술’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했다고 평가했을 가능성이 크다.